러 軍기지에 숨은 시리아 정부군… 타격 망설이는 美

입력 2018-04-13 18:49 수정 2018-04-13 23:35
지난 4일(현지시간) 시리아 북부 만비즈 기지에서 한 미군이 성조기가 꽂힌 장갑차 안에 타고 있는 모습. 미국은 지난주 자국이 지원하는 전략적 요충지이자 쿠르드·아랍연합군 점령지인 만비즈에 기지를 새로 구축하고 병력을 보강했다(위 사진). 시리아 다마스쿠스 북동부에 위치한 두마 지역에 12일(현지시간) 러시아군 헌병대가 주둔해 있다. 이날 러시아 국방부는 시리아 주민의 안전 보호를 위해 화학무기 공격이 있었던 두마 지역에 자국 병력을 투입했다고 밝혔다.(아래 사진) 신화뉴시스/AP뉴시스
전투기 등 군사 자산 빼내 러 해군기지 등에 재배치
美, 러 공습 땐 확전 우려 쉽게 공격 못할 거란 판단 대통령도 러 벙커에 숨은 듯
트럼프 “공격 시점 말 안해”

시리아 정부의 화학무기 공격 사태로 촉발된 미국 등 서방과 시리아 동맹 간 긴장이 거의 임계점에 다다른 분위기다. 러시아 뒤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시리아 정부는 비공식 채널을 통해 처음으로 ‘미군에 대한 보복 공격’ 가능성을 언급했다. 시리아 공습 방안에 드라이브를 걸던 미국은 숨고르기에 들어갔고 유엔은 평화적 해법 찾기에 다시 시동을 걸었다.

시리아는 미국이 주도하는 서방의 공습에 대비해 만반의 대응 태세를 갖춘 것으로 분석된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시리아군이 전투기와 헬기 등 군사 자산을 타르투스와 라타키아 등 시리아 내 러시아 해군기지로 재배치했다고 12일(현지시간) 전했다.

시리아 은퇴 장성인 무하마드 아바스는 FT에 “미국도 시리아에 기지가 있다. 우리는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 잘 알고 대응할 역량도 갖추고 있다”고 경고했다. 시리아가 공습을 받으면 자국 내 미군 기지에 보복 공격을 벌일 수 있다는 말이다. 미국은 쿠르드 민병대가 통제하는 시리아 북동부에 군인 2000명을 주둔시키고 있다.

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은 이날 모처에서 이란 최고지도자 외교자문인 알리 아크바르 벨라야티를 만나 “일부 서방 국가가 테러조직과 함께 조작극을 꾸미고 이런 거짓말을 바탕으로 시리아를 공격하겠다고 위협한다”고 말했다고 AP통신 등이 전했다. 아사드의 발언이 외부로 전해지기는 수일 만이다. 아사드가 러시아군이 주둔 중인 흐메이밈 공군기지 내 벙커에 은신해 있다고 알려진 가운데 미군 군용기가 인근 지중해 상공에서 정찰 비행을 했다고 러시아 리아노보스티 통신이 전했다.

CNBC가 접촉한 한 소식통은 시리아 정부군이 러시아군 기지로 피한 데 대해 “미국이 러시아군 기지 공격은 꺼릴 거라고 판단한 듯하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 역시 미국이 시리아 공습을 놓고 장고를 거듭하는 것도 ‘러시아와의 정면충돌 우려’라고 보고 있다.

러시아는 미국이 시리아 공습을 개시하면 미·러 양국 간에 전쟁이 촉발될 수 있다고 경고하는 상황이다. 서방의 공습으로 시리아 주둔군 등 자국민이 위험에 빠지면 미사일 격추에 그치지 않고 발사 원점까지 직접 타격하겠다는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바실리 네벤쟈 유엔 주재 러시아대사는 12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지금 최우선 문제는 전쟁의 위험을 피하는 것이지만 불행히도 어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확전 위험을 강조했다.

시리아 내 러시아군 사령관 유리 예프투셴코 장군은 반군으로부터 탈환한 두마 시내에 자국 병력을 투입해 작전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그는 시리아 주민에 대한 공격행위 예방 및 안전 보장, 법·질서 유지, 구호활동 조직 등을 병력 투입 이유로 들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도 시리아 공습에 대해 논의가 한창이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현지 방송 TF1 인터뷰에서 “(시리아 정부가) 최근 화학무기를 사용했다는 증거를 우리는 갖고 있다”며 “프랑스는 역내 안정을 해칠 수 있는 어떤 것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는 시리아 공습 방안에 대한 내각 동의를 얻었다.

다만 백악관은 군사 행동 개시 시한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밝힌 ‘아주 임박한’ 시기에서 뒤로 미루기로 했다고 밝혔다. 동맹국들과 좀 더 논의한 뒤 결정을 내리겠다는 입장이다. 트럼프는 ‘미사일 발사 선언’ 다음 날인 12일 트위터에서 “시리아 공격이 언제 이뤄질지는 한 번도 말한 적이 없다”고 해명했다.

유엔 안보리는 시리아 화학무기 사태 진상 규명을 위한 논의를 재개했다. 비상임이사국인 스웨덴은 ‘공정하고 독립적이며 전문적인 조사기구를 설치하자’는 내용의 결의안 초안을 회원국에 배포했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

그래픽=공희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