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진 열기구 조종사, 마지막까지 탑승객 지켰다

입력 2018-04-13 05:05
12일 오전 제주도 서귀포시 남원읍 신흥리 물영아리 오름 인근에서 추락한 열기구 주변에 폴리스 라인이 세워져 있다. 이 사고로 1명이 숨지고 12명이 다쳤다. 뉴시스

강풍에 나무와 충돌하자 “올라간다” 안심시킨 후 조종간 붙잡았지만 추락
승객은 튕겨나가거나 탈출


제주에서 13명이 탄 관광용 열기구가 착륙 도중 추락해 1명이 숨지고 12명이 다쳤다. 강풍에 밀린 열기구가 나무에 걸리고 들판에 부딪히며 멈춰 설 때까지 조종사가 조종간을 끝까지 놓지 않아 탑승객들은 큰 부상을 입지 않았다. 하지만 조종사는 크게 다쳐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다.

12일 제주동부소방서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11분쯤 제주 서귀포시 남원읍 신흥리 물영아리 오름 북쪽 상공에서 13명이 탄 열기구가 추락하면서 나무와 충돌했다. 사고로 조종사 김모(55)씨가 머리 등을 크게 다쳤고, 심정지 상태로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사망했다. 나머지 탑승객 12명은 허리와 다리 등에 부상을 입고 제주시와 서귀포시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다.

사고 열기구는 이날 오전 7시30분쯤 제주시 조천읍 와산리운동장에서 관광객 12명을 태우고 이륙했다. 40분간의 비행을 마치고 사고 현장 인근 착륙장으로 이동하던 중 강풍으로 숲 속 나무꼭대기에 걸렸다가 주변 초지에 착륙을 시도했다. 하지만 착륙 도중 열기구가 또다시 강풍에 150m가량 밀렸고 여러 차례 ‘쿵’ 소리가 날 정도로 땅에 부딪혔다가 나무에 부딪힌 뒤 멈춰 섰다. 이 과정에서 탑승객들은 탈출하거나 튕겨 나갔고, 조종사 김씨는 마지막 순간까지 조종간을 잡고 있다가 변을 당했다. 김씨는 아프리카와 영국, 캐나다, 일본 등지에서 2200시간 이상 비행한 베테랑 조종사로 22년의 무사고 비행경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 탑승객은 “열기구가 나무 위로 떨어지자 조종사는 ‘금방 다시 올라간다’며 탑승객들을 안심시키고 계속 조종했지만 결국 들판에 추락한 뒤 강한 바람에 미끄러지다가 멈춰 섰다”며 “조종사가 끝까지 (조종간을) 붙들고 있다가 크게 다쳤다”고 말했다.

소방 당국과 경찰은 열기구 운영업체 관계자와 탑승객들을 대상으로 추락 원인에 대해 조사하고 있다. 제주에서 열기구 사고가 발생한 것은 1999년 4월 이후 두 번째다. 당시 열기구대회에서 열기구들이 강풍에 밀리면서 고압선에 걸려 추락하는 등의 사고로 1명이 숨지고 4명이 다쳤다.

제주=주미령 기자 lalij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