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무 따른 임금제 도입 등 ‘낮은 단계’ 타협이 먼저 ‘높은 단계’ 타협은 시간 필요
정부가 가이드라인 만들고 기업엔 유연한 대처 주문… 우선 자주 만나는 것이 중요
‘좋은 일자리’를 찾는 청년에게 여전히 기업은 선뜻 믿기 힘든 존재다. 국민일보가 한국폴리텍대학 재학생 150명에게 물어본 결과 “기업은 우리를 소모품으로 생각한다”는 답변을 내놓는 이가 적지 않았다. 규모가 작은 중소기업으로 갈수록 불신의 벽은 더 커진다.
전문가들은 좋은 일자리 양산의 전제조건으로 구직자들의 불신 해소가 우선돼야 한다고 제언한다. 물론 정부가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사용자와 노조 그리고 청년 등 모든 사회적 주체가 논의하고 타협해야 한다.
다만 순서는 있다. 정부나 노사가 당장 작업에 착수할 수 있는 직무에 따른 임금제 도입처럼 ‘낮은 단계(Small deal)’의 타협이 먼저다. 미래를 위해 노사가 서로 양보해야 할 대기업-중소기업 이중구조 해결과 같은 ‘높은 단계(Big deal)’의 타협은 시간을 들일 필요가 있다. 단계적으로 한국만의 고용 유연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낮은 단계의 타협 실행과 관련, 박지순 고려대 로스쿨 교수는 11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각 주체가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오는 7월 300인 이상 기업부터 시행하는 주 52시간 근로 등과 관련해 원칙은 적용하되 어떤 방식으로 시간을 줄일지는 기업에 맡기라는 것이다. 독일의 경우 ‘근로시간 저축 계좌’라는 독특한 제도 도입으로 근무시간 유연성을 확보했다. 근로자가 회사와 계약한 시간보다 더 일한 만큼은 저축해 뒀다가 휴가가 필요할 때 마음대로 쓸 수 있도록 했다. 독일 정부는 근로시간이라는 기준만 제시했을 뿐이다.
청소와 관리직, 전문직 등 직급에 따라 임금을 적용하는 직무급제로의 전환 역시 낮은 단계에서 할 수 있는 일이다. 정부가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각 기업이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주문한다. 직원들이 자기개발을 할 수 있도록 직무능력개발을 활성화하는 것도 당장에 할 수 있는 일이다. 중소기업은 한 가지가 더 추가된다. 청년층의 불신 해결을 위한 사내 혁신이 필요하다. 직원을 ‘소모품’으로 보는 구조로는 아무리 정부 지원이 있어도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원장은 “(중소기업이) 방식을 모를 뿐 할 수 있는 일이 많다. 정부가 컨설팅 등을 지원하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낮은 단계의 타협으로 발판을 마련하면서 동시에 사회적 대타협이 필요한 과제의 논의도 시급히 시작할 필요가 있다. 2015년 9월 노사정대타협 당시 고용노동부 노사협력정책관으로 실무를 책임졌던 임무송 한국산업기술대 초빙교수는 “우선 자주 만나는 게 중요하다”고 제언한다. 이어 “서로 주고 빼앗는 ‘제로섬(Zero sum)’으로 보지 말고 장기적 관점에서 공감대를 형성해 나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발의한 헌법 개정안을 통한 사용자·노동자 관계 재정립이나 노사 간 임금 논의가 중장기적으로 논의해야 할 숙제다. 좋은 일자리 창출을 위해 사용자와 노조가 각각 무엇을 희생할 것인가부터 고민할 필요도 있다. 박 교수는 “일본 도요타의 경우 사상 최대 실적을 내고도 노조가 임금 동결을 제안하고 그 과실을 하청업체 임금 상승으로 돌렸다”며 “각 주체가 연대해 공정한 분배가 가능한 방법을 고민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
그래픽=안지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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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8-04-12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