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경제인사이드] 번갈아 당근·채찍 부동산 규제史… ‘10년 주기설’ 낳았다
입력 2018-04-12 05:00
박정희정부 개발·성장에 방점
노태우정부, 토초세 등 토지공개념 도입… YS, 금융 이어 부동산 실명제 시행
DJ, 시장 활성화 대책 쏟아내 시장 과열… 노무현, 부동산과의 전쟁 통해 現규제 골격
MB, 공급 확대 통한 주거 안정 주력… 규제·활성화 오간 갈지자 행보에 양극화 심화
'얼음땡 놀이'는 술래에게 붙잡힐 것 같으면 "얼음"하며 멈추고, 누군가 "땡"을 외치며 쳐 주면 다시 도망가는 간단한 놀이다. 혹자는 부동산 시장을 가리켜 '얼음땡 놀이 같다'고 한다. 술래 격인 정부가 규제로 압박하면 시장은 '얼음'으로 굳지만 술래(정부 또는 정책)가 바뀌면 순식간에 '땡'하고 돌아간다. 문재인정부가 집권 첫해 6·19, 8·2 부동산 대책을 시작으로 강도높은 규제안을 쏟아내자 부동산 시장이 '얼음' 모드에 들어갔다. 4월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시행에 이어 최후의 카드로 불리는 보유세 인상까지 논의되면서 '이번엔 잡을 수 있을까'하는 기대와 우려가 교차한다. 전문가들은 최소 상반기, 길게는 1년 가까운 조정 국면을 전망하면서도 대세 상승장이 꺾였는지에 대해선 판단을 유보하고 있다. 역대 정부들이 내놓았던 수많은 대책의 귀결은 항상 '땡'이었기 때문이다.
“당근과 채찍, 10년 주기설의 시작”
현재와 같은 투기 억제 성격의 부동산 정책은 박정희정부로 그 연원이 거슬러 올라간다. 개발과 성장이 지상과제였던 1960∼1970년대, 토지·부동산 정책 역시 방점은 개발이었다. 부동산 투기는 1962년 울산공업단지 개발과 함께 이슈가 돼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박정희정부는 1967년 ‘부동산 투기에 대한 특별조치법’ 제정을 시작으로 부동산 규제 정책들을 내놨지만 공업단지 조성, 도시계획 등에 비해 언제나 후순위였다. 정권 말인 1970년대 후반 중동 특수와 함께 부동산 가격이 치솟자 비로소 박정희정부는 투기억제 및 지가안정 대책, 경제안정화 종합시책 등을 연이어 발표, 시장 안정에 주력했다.
침체된 부동산 시장을 물려받은 전두환정부는 경기 활성화 정책과 투기 억제 정책을 끊임없이 교차하며 갈지(之)자 행보를 이어갔다. 정권 초기 양도세율 인하와 투기지역 해제 등 규제완화 조치를 연이어 발표하는 등 정책기조를 경기부양으로 전환했다가 주택가격이 40% 이상 폭등하자 민영주택 채권매입제 등을 도입해 투기 억제로 선회했다. 하지만 1980년대 중반 주택건설 활성화 조치와 서울 및 수도권 인구 급증이 맞물리면서 집값은 또 다시 급등한다.
1980년대 후반은 1970년대 말의 재현이었다. 주기적인 부동산 폭등을 일컫는 이른바 ‘부동산 10년주기설’의 시작이다. 부동산 가격 급등으로 개발 불로소득이 사회문제로 대두된 가운데 노태우정부는 택지소유상한제, 개발이익환수제, 토지초과이득세로 이뤄진 ‘토지 공개념’을 도입해 진화에 나선다. 양도세 비과세 축소를 골자로 한 ‘8·10 부동산 안정대책’ 등 오랜만의 강경 규제로 시장은 한동안 안정을 되찾은 듯 했다.
“안정의 90년대, IMF라는 변수”
뒤이어 등장한 김영삼정부는 금융실명제에 이어 1995년 부동산 실명제를 도입했다. 명의신탁을 제한해 부동산의 실소유자와 등기상 소유자 차이가 발생하고, 취득세와 재산세 등 각종 세금 회피를 통한 부동산 투기를 억제하기 위한 조치였다. 이에 더해 기업 임원에 대한 부동산 소유 조사와 유휴지 과태료 부과 등이 담긴 9·19 대책을 내놓았다. 주택공급 확대가 이어지며 1990년대 중반 시장은 안정세를 유지했지만 정권 말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는 부동산 시장의 시계추를 다시 10년 전으로 돌려놓고 말았다.
1997년 12월 국가부도위기에서 집권해 IMF 구제금융 요청으로 최악의 경제위기를 모면한 김대중정부는 주요 경기부양책으로 부동산 활성화를 택했다. 정권 기간 총 35차례의 전방위 주택경기 활성화 대책을 내놓았을 정도다. 1998년 양도세, 취득세, 등록세 감면을 필두로 청약자격·제한 완화, 분양가 자율화, 분양권 전매 한시 허용, 토지거래허가 신고제 폐지 등 무수한 부동산 활성화 대책을 쏟아냈다. 투기 부활은 필연적인 수순이었다. 2000년 주택시장 안정방안과 2001년 전월세 안정 종합 대책을 내놓으며 과열된 시장 진화에 총력을 다할 수밖에 없었다. 2002년에는 금리를 연 5.5%로 올리는 특단의 조치를 취하는 등 경제 살리기의 대가로 정권 말까지 투기억제책 마련에 골머리를 앓았다.
“규제의 시대, 규제의 역설”
부동산 광풍을 물려받은 노무현정부 집권기 2000년대 중반은 그야말로 ‘부동산과의 전쟁’ 시기였다. 투기억제 정책이 빈번히 남발됐지만 큰 효과는 없었다. 실거래가 신고제와 등기부 기재 도입 등은 금융실명제에 버금가는 사건으로 평가받기도 했지만 국내뿐 아니라 세계 부동산 시장이 호황에 호황을 거듭하는 가운데 집값이 20% 넘게 상승하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현재까지도 회자되는 5·23, 8·31 대책을 통해 분양권 전매 제한에 투기과열지구·투기지구 확대를 더해 현재까지 이어지는 부동산 규제의 골격을 잡았다. 보유세를 강화하고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및 종합부동산세를 도입했다. 모두 문재인정부에서 부활 또는 답습이 예상되는 규제들이다.
2005년에는 부동산 세제 개편과 함께 개발이익환수제를 도입했지만 강남 재건축 아파트가 사상 최대 수준으로 폭등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 특히 2006년에서 2007년 사이 주택 수요 규제를 기조로 한 투기억제정책으로 일관했지만 공급을 통한 주택가격 안정화 측면을 간과했다는 평가 속에 같은 기간 동안 주택 매매가가 급상승하는 실패를 경험해야 했다.
“다시 부동산 활성화, 방황하는 정책 목표”
‘경제살리기’를 내세워 정권교체에 성공한 이명박정부는 경제활성화와 주거안정화, 공급확대를 중심으로 한 부동산 정책 기조를 유지했다. 주택거래 정상화 및 주거안정 지원을 목표로 전반적인 규제 완화에 초점을 맞추면서 시장은 급반전했다. 우선 정권 초인 2008년 11·3 대책을 통해 강남3구를 제외한 투기지역과 투기과열지구를 해제했다. 또 2011년부터 2012년까지 취득세율 50% 한시 감면,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 폐지,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폐지 등으로 시장 활성화를 견인한 뒤 강남 3구까지 투기지역에서 해제했다.
전임 노무현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전면 부정하는 이명박정부의 정책은 주거 안정화 차원에서는 일정부분 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부동산 시장의 양극화를 심화시켰다. 특히 전세가격이 정권 내내 20% 이상 급격히 상승해 ‘전세대란’과 가계부채 급증을 야기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박근혜정부 역시 전임 이명박정부와 큰 틀은 유사했다. 2013년 4·1 대책을 통해 양도세 한시 감면 및 중과 폐지 기조를 이어갔고, 생애최초주택 취득세 면제 등으로 ‘내집 마련’을 장려했다. 공급억제에서 수요 확대 정책으로 전환하면서 하우스 푸어에 대한 지원을 제한적으로 시행했지만, 동시에 ‘부자 감세’를 통해 다주택자들에 대한 세제혜택과 지원도 병행했다. 특히 주택담보대출 요건과 재건축 연한 규제를 완화한데다 취득세율을 영구 인하하면서 주택시장 활성화를 장려했다. 덕분에 주택가격 및 전세가격 지수는 정권 내내 꾸준한 상승세를 보였다.
정건희 기자 moderato@kmib.co.kr
그래픽=이석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