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재권 강화·車 관세 인하, 자유무역항 건설도 제시… 美 줄곧 요구해온 핵심 사안
미-중 무역전쟁 진정 주목… 트럼프와 사전 교감說도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금융업 개방 확대와 자동차 관세 인하 등의 조치와 자유무역항 건설을 포함한 개혁개방 청사진을 제시했다. 대부분 중국과 무역전쟁 중인 미국이 줄기차게 요구해 온 사항이어서 시 주석이 적극적인 화해의 손짓을 보낸 것으로 해석된다. 앞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최근 유화적 제스처를 보낸 바 있어 양국의 무역전쟁이 타협 국면으로 접어들지 주목된다.
시 주석은 10일 하이난성 보아오에서 열린 보아오포럼 개막 연설에서 “개혁개방이라는 중국의 제2차 혁명은 중국을 크게 바꾸고 전 세계에 큰 영향을 줄 것”이라며 “중국의 개혁개방은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시 주석은 올해가 중국의 개혁개방 40주년이란 점을 거론하며 시장진입 규제 완화, 투자환경 개선, 지식재산권 보호 강화, 적극적 수입 확대 4가지 조치를 약속했다.
시 주석은 우선 “서비스업, 특히 은행·증권·보험 등 금융업 부분의 외국인 투자 제한 조치를 완화하는 동시에 보험업의 개방 절차를 가속화하겠다”며 외자 금융기구의 설립 제한 완화 등을 제시했다.
또 “올해 자동차 수입 관세를 상당한 폭으로 인하하고 다른 제품의 수입 관세도 낮출 것”이라며 “자동차 업종에서 외자 투자 완화를 추진하고, 올해 상반기에는 외자 투자 네거티브 리스트에 대한 수정 작업도 마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외국 기업의 합법적인 지식재산권 보호도 강화할 것”이라고 했다.
4가지 조치는 지금까지 미국이 줄곧 요구해 온 핵심 사항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달 25일(현지시간) 스티븐 므누신 미 재무장관이 류허 중국 부총리에게 서한을 보내 미국산 자동차 관세 인하, 중국 금융시장에 대한 미국기업의 접근성 확대 등을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9일 자신의 트위터에 미국의 자동차 수입 관세가 2.5%인 데 반해 중국은 25%에 달한다며 “멍청한 거래”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미국은 지식재산권과 관련해서도 ‘중국의 도둑질’ 관행으로 비난했다.
따라서 시 주석은 미국의 요구에 맞는 조치를 일일이 거론하며 화해의 손을 내민 셈이다. 이는 앞서 발표한 미국산 대두, 자동차, 항공기 등에 대한 보복관세 부과 방침을 사실상 철회하겠다는 의미도 된다. 따라서 미·중 정상 간 사전 교감이 있었을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8일 트위터를 통해 “중국은 무역장벽을 허물 것이고 지식재산권 협상은 성사될 것”이라며 “무슨 일이 있어도 시 주석과 친구로 남을 것”이라고 밝혔다.
미 백악관 관리는 시 주석 연설에 대해 “양국 간 신뢰를 발전시키는 계기로 판단된다”며 “중국이 구체적인 제안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고 블룸버그 통신이 보도했다. 그러나 시 주석의 약속이 실제 이행될지 회의적인 시각도 적지 않다. 시 주석이 언급한 조치가 상당수 기존에 발표된 것이고 구체적인 적용 시기와 내용이 제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크리스토퍼 발딩 베이징대 교수는 “과거에도 보아오포럼에서 많은 게 논의됐지만 구체적인 변화로 이어진 건 별로 없다”고 지적했다.
시 주석이 개혁개방을 주창하면서 중국 최남단 하이난성에 자유무역항을 건설하겠다고 밝힌 것은 ‘중국 개혁개방의 전도사’ 덩샤오핑의 이미지를 구축하려는 의도라는 해석도 나온다. 덩샤오핑이 1992년 초 남방 지역을 순시하며 개혁개방 확대를 주문한 ‘남순강화(南巡講話)’를 연상시킨다는 것이다.
시 주석은 하이난성에 대해 “개혁개방으로 흥한 곳”이라고 평가한 뒤 특정 후보지를 언급하지 않고 “중국 특색 자유무역항 건설을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하이난성을 염두에 둔 자유무역항은 홍콩이나 상하이보다 더 개방적인 곳이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하이난성은 2030년까지 완전한 ‘전기차 섬’으로 바꾸는 계획을 추진 중이며 관광산업 진흥을 위해 도박산업 허용까지 검토하고 있다.
덩샤오핑도 과거 하이난성 개발에 매달렸다. 하이난성은 88년 광둥성에서 독립해 중국 최대의 특별경제구역으로 지정됐지만 각종 부패사건과 부동산 투기 등이 기승을 부렸다. 덩샤오핑은 결국 실패를 인정하고 93년 모든 개발 계획에 대한 지원을 철회했다. 중국 정부는 다시 2009년부터 하이난성을 국제적인 관광지역으로 개발하기 위해 각종 투자와 자금 지원을 하고 있지만 성과는 미미한 실정이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
트럼프에게 손 내민 시진핑 “금융·車 개방 확대”
입력 2018-04-11 0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