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KIEP ‘한미연구소 개혁안’ 문건에 소장 교체 명시

입력 2018-04-10 18:11 수정 2018-04-10 21:59
부소장 자리는 폐지 요구 정책 환경 변화 등 이유 들어 개혁 카드로 인사 압박
정치적 판단 개입 가능성 스스로 논란 초래한 측면… 지원 끊긴 연구소 내달 폐쇄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이 투명성 결여 및 정책 환경 변화를 이유로 미국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SAIS) 산하 한미연구소(USKI) 개혁을 추진한 것으로 확인됐다.

보수 진영은 ‘코드인사에 따른 교체 요구’를 의심하고 있지만 KIEP는 내부적으로 구재회 USKI 소장의 연구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대신 연구소 운영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 구 소장이 물러나고 부소장 자리를 폐지하는 ‘인사 조치’가 불가피하다고 판단했다. 다만 KIEP가 국회에서 예산안이 통과된 사업을 중단시키면서까지 개혁을 추진한 배경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았다.

국민일보가 10일 입수한 복수의 KIEP 내부 문건(사진)에 따르면 KIEP는 USKI 사업 개선을 검토하면서 ‘투명성 확보’를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반드시 구 소장을 교체하고 회계 업무를 겸하는 부소장 자리를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내부 문건들은 USKI 논란이 외부에 알려지기 이전인 지난달 중하순에 작성된 것들이다. KIEP는 지난달 19일 작성한 ‘USKI 사업 개선 방안’에서 “소장의 장기 재직에 따른 연구소 운영 관련 투명성 결여 문제 해소 및 정책 환경의 변화 등에 새로운 출발을 위해” 소장 교체가 필요하다고 결정했다. “3월 말까지 해임 확약, 6월 말까지 해임조치 완료 요청”이라는 구체적인 시간표도 제시했다.

SAIS와 USKI는 부소장제 폐지는 수용할 수 없다며 KIEP의 요구를 거절했다. KIEP는 그러나 “제니 타운 38노스 대표가 부소장을 겸하면서 10여년간 USKI의 예산 관리를 혼자 도맡았다”며 “구 소장이 퇴임하더라도 제니 타운이 계속 회계 업무를 맡는다면 실제 개혁이 이뤄지기 힘들다”고 판단했다. KIEP는 “현 상황에서 사업개선 가능성이 희박한 USKI 지원 사업은 중단”이라고 결론 내렸다.

KIEP는 SAIS 내에 새로운 한국학 연구소를 설립하는 방안도 대안으로 검토한 것으로 확인됐다. 운영을 제대로 감시할 수 없는 USKI는 다른 재원으로 지원하고, KIEP가 새 연구소를 운영하겠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새 연구소 설립까지 시간이 걸리고 SAIS 내에 한국과 관련한 연구소가 두 개나 존재하는 게 부적절하다는 의견이 제시돼 폐기됐다.

KIEP가 논란을 자초했다는 비판은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KIEP가 내부 문건에서 개혁 배경으로 국회 시정요구뿐만 아니라 ‘정책 환경 변화’도 직접 언급했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부연설명은 없지만 정권교체에 따른 정치적 판단이 개입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부분이다. 보수 진영은 홍일표 청와대 정책실 소속 선임행정관이 지난해 11월 KIEP로부터 관련 내용을 사전에 보고받은 것을 지적하며 청와대가 인사에 개입했다고 비판하고 있다.

KIEP가 국회 의견을 무시한 게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국회가 예산을 편성했는데도 행정부에 속하는 KIEP가 지난달 말 사업 자체를 중단시켜버렸기 때문이다. 국회 관계자는 “입법부의 판단과 결정을 행정부가 무시해버린 것으로 해석할 소지가 있다”며 “예정대로 올해 정기국회에서 지원 여부를 결정했다면 불필요한 논란이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로버트 갈루치 USKI 이사장은 한국 정부의 예산 중단을 이유로 오는 5월 USKI를 폐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다만 38노스는 계속 운영한다는 입장이다.

김판 기자 pan@kmib.co.kr

그래픽=안지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