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 정부군이 반군 지역을 화학무기로 공격했다는 의혹을 놓고 미국과 러시아가 정면으로 맞붙었다. 미국은 군사적 대응까지 검토하며 시리아 정부를 지원해 온 러시아의 책임을 부각했다. 화학무기 공격 주장을 미국이 만든 ‘가짜뉴스’라고 단언하는 러시아는 터키·독일과 접촉하는 등 수세에 몰리지 않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9일(현지시간) 시리아 동(東)구타 두마에 가해진 화학무기 공격을 ‘가증스러운 공격’이라고 비난하며 “24~48시간 안에 중대한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말했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그는 백악관에서 군 장성들과 회의하기 전 기자들과 만나 이같이 밝히며 “군사적 옵션이 많다. 곧 알게 해 주겠다”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시리아 화학무기 사태의 책임이 있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그들은 아니라고 하지만 내가 볼 땐 의심의 여지가 별로 없다.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세라 허커비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성명을 내고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사태에 대응하는 데 만전을 기하기 위해 오는 13일 페루 리마에서 열리는 제8차 미주정상회의에 불참하고, 이후 예정됐던 콜롬비아 보고타 방문도 취소키로 했다”고 밝혔다. AP통신은 “미국 대통령이 미주정상회의에 불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전했다.
워싱턴이그재미너(WE)는 미 국방부 관계자들의 전언을 인용해 미군이 순항미사일을 발사하는 방안을 비롯해 복수의 군사 옵션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0일 미 해군 유도미사일 구축함 ‘도널드 쿡’호가 지중해 동부에 배치돼 시리아 공습에 참여할 수도 있다는 국방부 관계자들의 말을 전했다. WSJ는 지난해 4월 시리아 공습작전에 참여했던 미사일 구축함 ‘포터’호도 며칠 내 시리아 해역에 도달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로이터 통신은 미국이 시리아 정부군에 대한 다국적 군사 대응에 무게를 두고 있다는 미 정부 관계자들의 말을 전했다. 한 정부 관계자는 트럼프 행정부가 동맹국들과 보복 공습 문제를 논의했다고 워싱턴포스트(WP)에 설명했다. 그는 미국이 신속한 대응에 나서기로 한다면 의회 승인 절차가 까다로운 영국보다는 프랑스가 함께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시리아의 화학무기 공격에 관한 과거 보고서에 언급된 시설에 보복 공격이 집중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주요 표적으로는 시리아 MI-8 헬기의 본거지인 두마이어 공군 기지가 거론된다. 이 헬기는 지난 7일 두마 지역 상공에서 화학물질을 채운 통폭탄을 떨어뜨린 기종으로 알려져 있다.
러시아 크렘린궁 공보실은 “푸틴 대통령이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과 연이은 통화로 시리아 상황에 대한 견해를 교환했다”고 밝혔다. 미국·영국·프랑스 등 주요 서방국가가 시리아 정부를 화학무기 공격 주범으로 기정사실화하는 상황에서 러시아의 책임이 부각되자 외연 강화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크렘린궁은 시리아 화학무기 사태에 대한 도발과 추측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며 시리아 정부와 반군에 휴전을 촉구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결의안을 언급했다. 국제사회가 군사적으로 개입할 일이 아니라 시리아 내 당사자끼리 해결할 수 있도록 돕는 데 주력해야 한다는 취지다.
미국과 러시아는 안보리에서도 충돌했다. 니키 헤일리 유엔 주재 미국대사는 안보리 긴급회의에서 “러시아는 그들이 원하기만 했다면 이런 무분별한 살육을 중단시킬 수 있었음에도 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정권과 함께하며 망설임 없이 그를 지원했다”고 비난했다.
바실리 네반쟈 유엔 주재 러시아대사는 화학무기 사용설을 가짜뉴스라고 규정하고 “미국이 이번 일을 핑계로 시리아에 공격을 가한다면 엄청난 파장을 야기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간 미국 대통령이 미주정상회의에 불참한 것은 이번에 트럼프 대통령이 처음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시리아에서 화학무기 공격을 가했다는 의혹에 강력히 대처하겠다며 이르면 수 시간 안에 관련 결정을 내리겠다고 언명해 시리아에 응징을 가할 방침을 예고했다.
백악관은 연방수사국(FBI)이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 변호사인 마이클 코언의 뉴욕 사무실을 전격 수색해 포르노 스타 스토미 대니얼스에 13만 달러의 입막음용 돈을 준 정황에 관한 기록들을 압수한 다음날 대통령 일정 변경을 공표했다.
민간인을 상대로 화학무기를 사용한 의혹을 사는 시리아를 징벌하기 위한 군사 행동이 임박한 가운데 시리아 인근 해역에는 미국 미사일 구축함이 이동 배치됐다.
이에 시리아 알아사드 정권도 전군에 1급 경계령을 내리고 공격에 대비하는 태세에 돌입했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
시리아 화학무기에 트럼프 “곧 중대 결정”… 보복공격 나서나
입력 2018-04-10 18:32 수정 2018-04-11 0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