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졸업 후 27세 때 지도자 길… 2016년 12월 부천 지휘봉 잡아
과거엔 선수비-후역습 전술 구사 이번 시즌 공격축구로 승승장구
“1부 승격에 대한 간절함 크다”
5승 1패로 1위다. 걱정이 없을 것 같다. 하지만 10일 경기도 부천종합운동장에서 만난 K리그2(2부 리그) 부천FC 1995의 정갑석(49) 감독은 손사래를 쳤다.
“아이고, 아닙니다. 다른 팀들이 우리만 만나면 독기를 품고 뛰어요. 지난 경기에서 시즌 첫 패배를 당했는데, 우리 선수들이 자신감을 회복해야 합니다. 이제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다음 경기에 나서야죠.”
부천은 이번 시즌 K리그2 판도를 흔들고 있다. 지난 7일 치른 아산 무궁화와의 6라운드 경기(2대 4 패) 이전까지 개막 후 5연승을 질주했다. 이는 2013년 K리그2(옛 챌린지 포함) 출범 이후 전 구단을 통틀어 최고 기록이다. 홈구장인 부천종합운동장의 공사로 8라운드(4월 22일 안산 그리너스전)까지 원정으로만 경기를 치러야 하는 가운데 거둔 성적이어서 더욱 놀랍다.
정 감독은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5일 한국프로축구연맹으로부터 3월 ‘이달의 감독’으로 선정됐다. 그는 K리그의 한국인 감독들 중 유일하게 프로에서 뛰어 본 경험이 없다. 충북대 졸업 후 실업팀 입단이 무산되자 27세의 나이에 지도자의 길로 들어섰다. 그는 1996년부터 10년 동안 모교인 충북대를 이끌었다. 이후 홍익대와 내셔널리그 고양 국민은행의 수석코치를 거친 그는 대전 시티즌 U-18팀 감독으로 활약했다. 그러다 2016 시즌을 앞두고 부천 수석코치로 입단해 송선호 전 감독과 함께 그 시즌 부천의 리그 3위와 대한축구협회(FA)컵 4강 달성에 힘을 보탰다. 그는 2016년 12월 8일 부천 사령탑에 올랐다. 지난 시즌 부천은 4위 성남에 승점 1점 차로 뒤져 아쉽게 승강 준플레이오프(PO) 진출에 실패했다. 하지만 구단은 그에게 다시 지휘봉을 맡겼다.
정 감독은 프로 선수 경험이 없기 때문에 누구보다 열심히 지도자 수업을 받았다. 그는 2005년부터 2년간 박태하 중국 옌볜 푸더 감독, 고(故) 이광종 전 올림픽 대표팀 감독 등과 함께 P급 라이선스(지도자 교육 과정 중 최고 등급) 1기 과정을 밟았다.
“당시 독일에서 연수를 받던 중 강사로부터 ‘이젠 축구 문화를 모르면 감독이 될 수 없다’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선수들을 지휘하는 것만이 감독의 역할이 아니라 선수단의 총괄 매니저로서 팬들의 요구에도 부응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과거 부천은 선수비-후역습 전술을 구사했다. 이 전술로 2016년과 2017년 FA컵에서 K리그 최강 전북 현대를 제압하는 파란을 일으켰다. 하지만 이번 시즌엔 공격축구를 한다. 정 감독은 “팬들이 공격축구를 좋아하고 성적이 좋아도 수비축구를 하면 외면당할 수밖에 없다”며 과감한 결단의 이유를 밝혔다. 다행히 윌리안 포프, 공민현 등 공격력을 갖춘 선수들이 팀에 합류해 팬들이 원하는 공격축구를 할 수 있게 됐다는 게 정 감독의 말이다.
브라질 출신의 포프는 이날 현재 5골로 K리그2 득점 선두다. 공민현은 4골로 공동 2위에 올라 있다.
내세울 경력이 없었던 정 감독이 선택한 것은 믿음의 리더십이었다. 그는 선수들을 믿었고, 단점을 지적하기보다는 장점을 극대화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권위를 내세우지 않고 함께 대화하며 팀을 만들어 갔다. 정 감독의 소탈하면서도 열정적인 모습에 선수들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처음에 정 감독과 거리를 두고 말을 걸지 않았던 선수들은 이젠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누며 팀의 미래를 함께 고민한다.
시민구단인 부천은 재정이 열악해 스쿼드가 얇다. 전문가들은 부천이 언젠가는 고비를 맞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하지만 정 감독은 자신만만했다. “물론 고비는 찾아올 겁니다. 하지만 우리 선수들은 충분히 극복할 수 있습니다. K리그1 승격에 대한 간절함이 있기 때문이죠.”
부천=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
사진=윤성호 기자
무명 감독, K리그2를 흔들다
입력 2018-04-11 0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