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리 대신 공감… 미투 ‘포스트잇 시위’ 확산

입력 2018-04-11 05:00
성희롱 발언을 한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문과대학 A교수의 연구실 바깥벽에 10일 A교수를 비판하는 내용이 적힌 포스트잇이 가득 붙어있다. 최현규 기자

연세대 교수 연구실 문에 ‘룸살롱 아니다’‘사과하라’ 형형색색 포스트잇 붙어
여고 창문의 미투도 눈길… 대자보에서 포스트잇으로 저항의 수단 교체 움직임

대학과 고등학교에 메모지 ‘포스트잇’을 통해 미투(#MeToo) 운동을 지지하고 집단 공감을 드러내는 시위가 잇따르고 있다. 이러한 시위에는 대자보에 주로 담겼던 논리적 설득이 없다. 대신 더 넓은 범위의 공감과 자발적 연대의지가 빈자리를 채웠다.

10일 연세대 문과대학 건물에 있는 A교수 연구실 문 앞에는 형형색색의 포스트잇이 붙어 있었다. ‘교실은 룸살롱이 아니다’ ‘피해자가 원하는 방식으로 사과하라’ 등 적힌 표현은 달랐지만 담고 있는 의미는 학내 성폭력 문제를 해결하라는 것으로 모두 같았다.

앞서 연세대에서는 A교수가 강의 중 조모임을 구성하면서 여학생들을 강의실 앞으로 나오게 하고, 남학생들에게 마음에 드는 여학생을 선택하라고 하는 등 ‘룸살롱 초이스’를 연상케 하는 모습을 연출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해당 교수는 9일 대자보를 붙이고 “조 편성과 관련해 여학생들이 큰 상처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을 인지하지 못했다”면서 “배려와 젠더 감수성이 부족했지만 결코 ‘성폭력’을 저지른 적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여성 교수들은 학생들의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연세대 여교수 85명은 같은 날 선언문을 통해 “성적 폭력에 저항하는 학생들의 행동에 지지의 뜻을 전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학내 곳곳에서 젠더 위계나 성적 대상화에 관한 사건들이 발생하고 이를 고발하는 학생들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우리는 폭력이 아니라고 외면해 온 장면들을 다시금 성찰하게 됐다”고도 전했다.

학생들이 미투 운동에서 포스트잇 시위를 벌인 건 처음이 아니다. 앞서 이화여대에서는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조형예술대학 K교수와 음악대학 S교수의 연구실 앞이 포스트잇으로 뒤덮였다. 교사의 성폭력 의혹이 불거진 서울 노원구의 한 여고에서도 학생들이 창문에 붙인 미투(#MeToo), 위드유(#WithYou) 문구가 화제가 됐다. 덕성여대, 성신여대 등에서도 포스트잇 연대 시위가 진행 중이다.

이런 포스트잇에 적힌 글에는 논리적 설득이 필요하지 않다. 그동안 진행된 미투 운동으로 사회 전반에서 성폭력 문제에 대한 공감이 충분히 이뤄졌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의사표출 방법인 대자보의 경우 긴 글을 통한 논리적 설득과 상황 설명이 필수적이었다. 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는 “포스트잇에는 논리적 설득 없이 감성적인 공감만으로도 충분히 소통이 가능하다는 믿음이 깔려 있다”고 설명했다.

글을 적을 면적은 좁아졌지만 공감의 범위는 넓어졌다. 2014년 세월호 참사,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을 지나오며 한국사회에서 포스트잇이 저항과 연대의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포스트잇은 강남역 살인사건 등을 거쳐 오며 공유된 저항의 코드”라며 “이를 붙임으로써 일반 시민들의 목소리를 전달한다는 의미가 내포돼 있다”고 말했다.

이화여대에서는 11일 학내 권력형 성희롱·성폭력 방지를 위한 제도개선 촉구 간담회가 열린다. 학생들과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참석해 학내 성폭력과 관련된 제도 개선 필요성을 논의할 예정이다.

임주언 조민아 기자 eon@kmib.co.kr

사진=최현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