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정부는 적폐청산을 명목으로 박근혜·이명박 정권에 대한 수사를 1년 가까이 하고 있다. 과거 관행으로 치부되던 일도 시대 변화와 한층 엄격해진 도덕적 잣대에 따라 단죄가 진행 중이다. 문 대통령 지지율이 70%를 넘나들 정도로 높은 것은 불공정 관행이나 비리와 결별하고 공정하고 투명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사이다’ 행보에 많은 국민들이 박수를 보내고 있다는 방증이다. 그런데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국정철학으로 내세운 현 정부가 국민의 눈높이에 맞지 않을 뿐더러 도덕성이 의심되는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을 감싸는 것은 도무지 이해하기 힘들다.
청와대는 9일 “국민 기대와 눈높이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지적은 겸허하게 받아들이나 해임에 이를 정도로 심각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했다”며 김 원장 임명을 철회할 뜻이 없다고 했다. 적폐청산을 한다면서 자기편에는 면죄부를 주는 것은 이중잣대이자 오기다. 금융검찰로 불리는 금감원장은 높은 도덕성이 요구되는 자리다. 그런데 본인이 피감기관 돈으로 해외출장을 세 차례나 다녀온 데다 인턴 출장비까지 피감기관에 떠넘겼으니 금융권에 영(令)이 서겠는가. 금감원장은 국회 인사청문회 대상이 아니다. 청와대가 만약 이런 이유로 김 원장을 옹호하는 것이라면 오산이다. ‘음모론’으로 몰고 가는 여당의 태도도 민심을 한참 잘못 읽고 있는 것이다. 오죽했으면 현 정권에 우호적인 정의당마저 “날 선 개혁의 칼을 들어야 하는 입장에서 뚜렷이 드러나는 흠결을 안고 제대로 직무를 수행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비판했겠는가.
김 원장을 둘러싼 의혹은 청와대가 묵인한다고 해서 덮일 일이 아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검찰 수사 대상이다. 19대 국회의원 시절인 2014∼2015년 국회 예산이 아닌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과 한국거래소, 우리은행 등 피감기관 돈으로 해외출장을 간 것도 문제지만 ‘실패한 로비’도 아니었다. 김 원장은 “KIEP가 요청했던 유럽사무소 예산을 국회 심의 과정에서 반영하지 않았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했다. 하지만 출장을 다녀온 뒤 예산소위에서 관련 예산을 부대의견에 넣자고 했고, 이듬해 유럽 모니터링 사업으로 이름을 바꿔 반영됐다. 9박10일간의 미국·유럽 출장 때 동행한 여성이 정책비서라는 해명도 거짓이었다. 출장 기간 중 “공식 업무만 했다”고 했지만 중국 출장에 이어 유럽 출장 때도 시내 관광을 한 의혹이 제기됐다.
김 원장에 대한 검찰 수사는 불가피하다.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 등 야당은 10일 김 원장에 대해 뇌물·직권남용·공직자윤리법 위반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고 국정조사도 요구했다. 김 원장은 지금이라도 자진사퇴하는 게 도리다. 검찰은 제대로 수사해야 한다. 그래야 살아 있는 권력의 눈치를 보고 죽은 권력만 표적 수사한다는 소리를 안 듣는다.
[사설] 김기식 문제없다는 정권의 오만함을 경계한다
입력 2018-04-11 0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