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 남성 쥐락펴락하는 스물한 살 파견직 여성, 사채업자에겐 꼼짝 못해
비현실적 설정, 설득력 부족
박해영 작가·김원석 PD 합작품으로는 기대 이하
대기업에서 일하는 스물한 살 파견직 여직원이 있다. 일반적으로 파견직은 회사 내 권력관계에서 가장 하위에 있다. 옳고 그름을 떠나 그게 현실이다. 하지만 tvN 수목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는 중년 남성들을 쥐락펴락하는 파견직 여직원(이지안 역·아이유)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이지안은 회사 임원을 위기에 빠뜨리고 대표를 협박하면서 스토리를 끌어간다.
드라마에서 이런 식의 판타지는 충분히 가능하다. 하지만 ‘나의 아저씨’가 만들어 놓은 판타지는 불편하고 불쾌하다. 갓 스물을 넘은 어린 여성이 40대 중반의 남성들을 휘두르는 설정은 ‘롤리타신드롬’(미성숙한 소녀를 정서적으로 동경하거나 성적으로 집착하는 증상)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한다. ‘나의 아저씨’는 방송 전부터 남녀 주인공의 나이 차(24세)와 제목이 풍기는 분위기 때문에 롤리타신드롬 논란을 겪었다. 6회까지 방송된 지금도 이 논란은 전혀 해소되지 않았다.
드라마의 배경이 되는 곳은 한 대기업이다. 이지안은 스물한 살, 검정고시 출신, 여자, 파견직으로 ‘을 중의 을’이지만 종종 사무실 분위기를 장악한다. 복사기를 부술 듯 때리며 기분 나쁜 티를 내고, 냉랭한 태도로 주변을 일순간 싸늘하게 만드는 일도 부지기수다.
이런 말을 하기도 한다. 45세인 소속 부서 부장 박동훈(이선균)에게 싸늘한 말투로 “밥 좀 사주죠”라고 한다거나, 회사 대표 도준영(김영민)에게는 “왜 아줌마랑 사귀지?”라고 묻는다. 회식자리에서 회사 내 정치에 대해 혼잣말로 투덜대는 30대 남자 직원에게 “드러운 새끼”라고 욕하며 따귀를 올려붙이기도 한다. 하지만 누구도 이지안을 나무라지 않는다.
‘나의 아저씨’에서는 이토록 비현실적인 장면들이 끊임없이 변주된다. 이지안은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고 청각장애인 할머니를 돌본다. 16세에 사채업자를 칼로 찔러 죽이면서 중학교도 졸업하지 못했다. 스물한 살이 될 때까지 세상은 이지안에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런데 유독 이 회사 임직원들만큼은 그에게 꼼짝도 못 한다.
보통 ‘을의 반격’은 통쾌하게 마련인데 이지안의 태도는 석연찮다. 드라마 배경이 되는 이 회사에선 비밀을 알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파견직 이지안이 모두에게 ‘갑’이다. ‘나의 아저씨’에서 이지안이 주변 인물들에게 보여주는 태도는 그래서 당당함보다 무례함에 가깝다.
정작 이지안은 자신을 괴롭히는 ‘갑’인 사채업자(이광일 역·장기용)에게는 옴짝달싹 못 한다. 무자비하게 때리면 때리는 대로 맞는다. 사채업자였던 이광일의 아버지를 죽인 데 대한 죄책감 탓에 이지안은 맞서기보다 맞기를 택한다. 폭력을 폭력으로 갚는 것을 기꺼이 수긍하는 메시지 또한 썩 와 닿지 않는다.
비현실적인 설정과 설득력 떨어지는 전개는 몰입을 방해한다. 시청률 4%가 최악의 성적은 아니다. 하지만 ‘올드미스 다이어리’, ‘또! 오해영’ 등에서 여성의 삶을 현실적으로 생생하게 그려내 호평을 받은 박해영 작가와 ‘미생’, ‘시그널’ 등을 연출해 명감독 반열에 오른 김원석 PD의 합작품으로는 기대 이하라는 평가다.
문수정 기자
‘을의 반격’ 얘기하지만… 보면 불편한 이 드라마
입력 2018-04-11 0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