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김다은] 세상이 네 것이라면

입력 2018-04-11 05:00

소설 ‘언어의 7번째 기능’은 프랑스의 저명한 기호학자이자 문학비평가인 롤랑 바르트의 죽음으로 시작된다. 1980년 당시 사회당 대선 후보였던 미테랑과 점심을 먹고 나오다가 그는 교통사고를 당했다. 병원에 실려 갔다가 한 달 뒤 사망했으니, 여기까지는 실화다. 그런데 소설 속에서는 우연히 일어난 사고가 아니었다. 바르트는 괴력의 비밀문서를 가지고 있었고, 이를 뺏으려는 경쟁자 혹은 거대한 비밀조직에 의해 타살되었다는 것이다.

바르트가 살해당한 것은 로만 야콥슨의 언어의 7번째 기능을 손에 넣었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의사소통할 때 여섯 가지 언어 기능이 작동하는데 정보, 감정표현, 명령, 친교, (사전 같은) 메타언어, 시적 기능이다. 그런데 야콥슨이 미처 발표하지 못한 일곱 번째 ‘마법적 혹은 주술적 기능’이 있다. 이 기능은 세상을 뒤집을, 원자폭탄보다 무서운 힘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그것은 발화와 동시에 행위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인간의 언어가 신의 말씀에 가까운 수행능력을 지닐 수 있다는 발상이다. “빛이 있으라” 말씀하시니 빛이 생겼다(유대교-기독교 세계에서 지금까지 발견된 가장 오래된 수행적 발화)와 같은 것이다.

소설가 로네 비네는 움베르토 에코의 입을 통해 이렇게 말한다. “이런 기능을 알게 된 사람, 그것을 마음대로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도 세계의 주인이 될 수 있겠죠. 그 힘은 무궁무진할 겁니다. 모든 선거에서 이길 수 있을 것이고 군중을 뜻대로 움직일 수 있을 것이며 혁명을 일으키고 여자를 유혹하고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물건을 팔 수 있을 것이고 제국을 건설하고 모든 땅을 차지하고 원하는 건 뭐든지, 어떤 상황에서든 차지할 수 있을 겁니다.”

지적 유희를 즐기고자 한다면 이만한 책을 찾기 힘들 것이다. 언어로 게임을 하면서 그 대가로 패배자의 손가락과 고환을 잘라내는 로고스 클럽(LC)이나 적나라한 남창(男娼)의 묘사 등 실존하는 서구 지식인들의 지적 가면을 가차 없이 벗겨놓았으니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게다가 소설가가 신의 언어를 꿈꾸고 있으니 얼마나 발칙하고 실험적이겠는가. 하지만 다 읽고 나니 바르트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만난 지골로(몸 파는 남자)에게 던졌던 질문이 맴돌았다. “세상이 네 것이라면 무엇을 하고 싶지?” 지골로는 모든 법을 없애버리겠다고 대답한다. 소설 속 다른 인물들도 질문에 대응하듯 권력 남용을 꿈꾼다. 권력이 한 개인의 목적 달성을 위해 지닐 수 있는 수단의 총화이고 보면, 이 기능을 사용해 세상을 제멋대로 휘두르거나 개인의 목적을 위해 수단을 권력 자체로 사용하려는 것은 예정된 수순이다. 정치적 음모를 꾸미고, 지적 경쟁자를 꺾고 죽이는 데 거리낌이 없다. 그 과정에 데리다는 코넬대 근처 묘지에서 개에 물려 죽고, 알튀세르는 아내를 죽이고, 크리스테바와 솔레르스 부부는 바르트 살해를 획책하고…. 절대권력이 만들어갈 아름다운 세상에 대한 낭만은 찾아볼 수 없다.

소설책을 덮고 산책을 나섰다가 한 그루 나무 앞에 발길을 멈췄다. 가장 아래쪽의 굵고 강한 줄기들이 위쪽을 받쳐주듯 뻗어 있고 그 위의 줄기들도 층층이 윗가지들을 받쳐주며 뻗어 있었다. 매해 봄이면 새 가지가 나오므로 제일 먼저 나온 가지가 맨 아래쪽에 자리 잡은 것이다. 인간 세계에서는 권력 있고 강한 것들이 위쪽을 차지하고 약한 것들을 제압하고 지배하는 반면 자연은 강한 가지들이 아래쪽을 차지하고 위의 연약한 가지들을 받쳐주고 있었다. 가장 연약한 윗가지에서 하늘을 향해 생명의 기운이 치솟고 있었다. 인간이 언어의 일곱 번째 기능의 비밀을 터득한다 해도 신의 언어와 결코 대동해질 수 없는 이유가 아닐까 싶었다. 신의 언어는 약자와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언어였다. 사랑의 언어였다. 아, 인간이 감히 풀 수 없는 신의 언어의 기능은 그토록 신묘했다. 윗가지들에서 피어난 새싹들이 포도나무의 머리에 초록 관을 씌워주고 있었다.

김다은(소설가·추계예술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