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가 ‘좋은 일자리’를 바라보는 시각은 기울어져 있다. 일반적으로 대기업·공공부문은 좋은 일자리로 분류된다. 반면 중소기업의 평가는 야박하다. 한국폴리텍대학 재학생 15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국민일보 9일자 1·3면 보도)에서 보듯 적극적 구직자들의 평가는 더 가혹하다. 돈을 더 준다고 해서 중소기업 기피 현상을 없애기는 쉽지 않다.
문제는 중소기업에 대한 인식 전환이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대기업 등에 취직할 수 있는 기회는 갈수록 줄고 있다는 점이다. 이직률이 높은 중소기업과 달리 규모가 큰 기업일수록 이직률은 떨어진다. 고용 안정성이 높기 때문이지만 거꾸로 보면 그만큼 경직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들어갈 수 있는 자리가 너무 적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은 고용 관련 지표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9일 고용노동부의 고용노동통계에 따르면 대기업으로 분류 가능한 근로자 300인 이상 사업장의 부족한 일자리는 관련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2010년 이후 단 한번도 1만개를 넘어 본 적이 없다. 통계 작성 이후 최대치를 기록한 지난해에도 부족한 일자리 수는 9262개에 그쳤다. 정규직과 같은 상용직뿐만 아니라 임시·일용직을 다 합친 수치다. 전체 일자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0.3%에 불과하다. 통계청 집계를 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만 20∼39세 실업자는 59만2000명에 달한다. 통계만 봤을 때 이들에게 일반적으로 알려진 좋은 일자리를 차지하는 일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수준으로 어렵다.
대기업에서 부족한 일자리를 찾기가 어려운 이유 중 하나로는 고용 경직성이 꼽힌다. 정부는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한 이유 중 하나로 ‘과도한 정규직 고용보호’를 꼽았다. 지난달 청년 일자리 대책을 발표하며 한국의 고용 경직성 지수가 2.37로 너무 높다고 진단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이 2.04라는 점과 비교했을 때 지나치게 높다는 것이다.
대기업의 이직률 감소 현상도 한몫한다. 근로자 300인 이상 사업장의 이직률은 통계를 처음 작성한 2010년만 해도 3.9%에 달했다. 당시에는 300인 미만 사업장(4.6%)과 큰 차이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해에는 이직률이 2.8%까지 떨어지면서 300인 미만 사업장(5.0%)과 격차가 벌어졌다.
상대적으로 대기업 종사자가 적은 한국만의 독특한 구조가 만들어낸 상황이다. OECD가 지난해 11월 발간한 ‘기업가 정신(Entrepreneurship at a glance 2017)’ 보고서를 보면 한국만 유독 대기업 종사자에 비해 소규모 기업 종사자가 많은 삼각형 구조다. 보고서는 2014년 기준 37개국의 사업체 규모별 종사자 수를 비교했다. 한국의 경우 전체 근로자 중 1∼9인 사업장에 종사하는 이의 비중이 43.3%로 가장 많다. 반면 250인 이상 사업장에서 종사하는 이들은 12.8%에 불과하다. 해당 보고서가 집계한 37개국의 250인 이상 사업장 종사자 평균 비중은 31.7%다. 한국은 평균치의 3분의 1 정도 수준에 그친다.
전문가들은 기업의 고용 유연성 확보와 함께 중소기업이 덩치를 키워 좋은 일자리가 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정부의 ‘연출’을 주문한다. 그렇지 않다면 청년층이 인식하는 좋은 일자리 부족 현상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 진단이다. 지난해 청년 실업률이 9.8%를 기록하며 2년 연속 최고치를 기록했지만 300인 미만 사업장의 구인난은 사라지지 않았다. 300인 미만 사업장의 부족한 일자리는 지난해까지 3년 연속 20만개 이상을 기록했다. 좋지 않은 일자리에 가기보다는 차라리 실업자로 취업 준비를 하는 게 낫다는 인식이 반영됐다. 김주섭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한국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극이 지나치게 크다”며 “중소기업이 생산성을 키워 성장해야 일자리 문제를 비롯한 구조적 문제 해결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
그래픽=이은지 기자
[청년이 말한다. 좋은 일자리란?] 쪼그라드는 ‘좋은 일자리’… 中企 ‘성장사다리’ 갖춰야
입력 2018-04-10 05: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