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그머니 정례화된 추경… 정례화된 ‘부실 심사’

입력 2018-04-10 05:00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왼쪽)이 9일 국회에서 국회 예결위 자유한국당 간사인 김도읍 의원을 만나 추가경정예산안에 대한 협조를 요청하며 악수하고 있다. 뉴시스
정부 추경 모두 6번 실시 사유는 경기 위축과 일자리
국회 예결위 부별 심사 전무 종합정책질의도 대충 진행
개헌안·방송법 대치 속 총리, 추경안 시정연설 무산

“구조조정으로 발생할 수 있는 실직자를 위한 근본 대비책이 될지 따질 것”(2016년 추가경정예산 국회 심사 당시 기동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변인).

“충분한 시간을 갖고 국민 혈세 한 푼이라도 낭비되는 일 없도록 철저히 현미경 심사를 할 예정”(지난해 추경 국회 심사 당시 바른정당 보도자료).

추경은 국회에서 항상 ‘뜨거운 감자’다. 야당은 국가 재정 악화 등을 이유로 정부의 추경을 반대하며 그 적절성을 철저하게 검증하겠다고 예고한다. 실제로 철저한 검증을 했을까. 국민일보가 최근 10년(2008∼2017년)간 추경 편성 과정을 분석한 결과 국회 내 정쟁은 떠들썩했지만 심사는 부실했다.

지난 10년 동안 정부의 추경은 전체 6번 있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영향으로 이듬해인 2009년 역대 최대 규모(28조4000억원)의 추경이 편성됐다. 이후 재정 악화로 추경이 편성되지 않은 2010∼2012년, 특별한 요인이 없었던 2014년을 제외하면 매년 추경이 있었다. 사실상 추경이 정례화된 것이다.

정부가 제시한 추경 편성 사유는 2008년(고유가에 따른 농어민 생활 안정 등)을 제외하고는 ‘경기 위축’ 또는 ‘일자리’였다. 국가재정법은 추경을 함부로 편성하지 못하도록 대규모 자연재해 발생이나 대량실업 사태 등으로 요건을 엄격히 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야당은 ‘추경 편성 요건에 부합하지 않는다’ ‘효과 없는 추경이다’ 등의 이유로 비판해 왔다.

국회에서 본격적으로 추경안 심사 절차를 시작하면 야당의 비판의 날은 무뎌졌다. 국회에 제출된 추경안은 소관 상임위 예비심사와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종합심사를 거쳐 본회의에서 심의·의결된다. 이 절차 중 예결위 종합심사가 핵심인데, 이 단계는 종합정책질의·부별 심사·예산안조정소위 심사 등으로 구성된다.

하지만 지난 10년간 6차례의 추경안 심사 과정에서 부별 심사는 단 한 차례도 열리지 않았다. 부별 심사는 예산 관련 각 부처 장관을 국회로 불러 예산의 적절성과 효과 등을 묻는 단계다. 정쟁 과정에서는 추경의 적절성과 효과를 문제 삼지만, 실제로 이를 검증할 절차는 생략하는 것이다. 또 추경안에 대한 전문가 의견을 듣는 공청회는 2009년에만 열렸다.

민주당 관계자는 9일 “보통 종합정책질의 단계에서 각 부처 장관에게 예산 내용을 물어본다”며 “부처별 심사를 따로 또 하는 건 비효율적이라고 보고 여야 합의로 열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추경은 경제적 시급성 때문에 편성하는 것이어서 여야 모두 심사를 꼼꼼하게 하기보다 빠르게 하는 데 중점을 둔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진방 인하대 경제학과 교수는 “추경 때문에 국회가 항상 시끄럽지만 심사 과정에서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예산만 꼼꼼히 보고 그 외 예산은 대충 넘긴다”고 지적했다.

의원들이 추경 심사 과정에서 편성 목적과 달리 지역구 챙기기용 선심성 예산을 ‘쪽지 예산’으로 넣는 것도 비판의 대상이다. 예컨대 2016년 추경에서는 김한표 새누리당(자유한국당 전신) 의원(경남 거제)이 한려해상국립공원 바람의 언덕 주차장과 지심도 생태관광명소 조성 등을 위한 예산 증액을 요청해 논란이 된 바 있다. 그해 추경 목적은 조선·해운업 구조조정 대책 및 일자리 창출이었다.

한편 이날 예정된 이낙연 국무총리의 추경안 시정연설을 위한 국회 본회의는 열리지 못했다. 개헌안과 방송법 개정안 등에 대한 여야의 협상이 무산됐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하고 “(이 총리의) 시정연설을 언제 하게 될지 모르는 유감스러운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시기상 반대가 있으리라고 이해되지만 그렇다고 지방선거 이후 추경을 편성해선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다”며 “국회의 대승적 결단을 부탁한다”고 강조했다.

윤성민 기자 woody@kmib.co.kr

그래픽=이석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