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타니, 다른 별에서 온 거 맞지?

입력 2018-04-09 19:25
미국프로야구(MLB) LA 에인절스의 선발투수 오타니 쇼헤이가 9일(한국시간) 미국 애너하임 에인절스타디움에서 열린 오클랜드와의 홈경기 1회초에 힘차게 투구하고 있다. 타자로서 3경기 연속 홈런을 터뜨린 직후 선발투수로 등판한 오타니는 7이닝 무실점으로 2승째를 거뒀다. AP뉴시스

마운드에선 160㎞대 강속구 스플리터 앞세워 잇단 삼진쇼
타석에서는 저지·마차도 등 홈런타자들보다 많은 대포 쏴


“굿 모닝, 굿 애프터눈, 굿 나잇!” 미국프로야구(MLB) LA 에인절스의 선발 오타니 쇼헤이가 1회초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의 1, 2, 3번 타자를 모두 헛스윙 삼진으로 돌려세우자 경기를 중계하던 NBC스포츠의 캐스터가 이렇게 외쳤다. 완벽한 투구 동작, 인상적인 구속…. 중계진의 똑같은 감탄이 경기 내내 되풀이됐다. 관중의 환호, 오클랜드 타자들의 헛스윙도 마찬가지였다.

오타니는 9일(한국시간) 미국 애너하임 에인절스타디움에서 열린 오클랜드와의 홈경기에서 7회 1사까지 단 1명의 주자도 내보내지 않는 빼어난 투구를 선보이며 7이닝 무실점, 2승째를 거뒀다. 지난 2일에 이은 연승이며, 타자로서 3경기 연속 홈런을 선보인 직후 출장에서의 승리였다. 이날 승리로 오타니는 1919년 워싱턴 세네터스의 짐 쇼 이후 99년 만에 개막 첫 10경기에서 2승과 3홈런을 동시에 거둔 MLB 선수가 됐다.

오클랜드 타자들은 지난 2일에 이어 오타니를 두 번째로 상대했지만 여전히 무기력한 모습이었다. 스트라이크존 구석을 파고드는 직구, 똑바로 날아오다 뚝 떨어지는 스플리터에 연신 헛방망이질을 했다. 7회초 1사까지 19타자가 단 1차례도 1루를 밟지 못했다. 지난 2일 경기까지 포함하면 오타니를 상대로 27타자 연속 범타였다.

이날 오타니의 직구 최고구속은 시속 99.6마일(160.3㎞), 평균구속은 96.5마일(155.3㎞)에 달했다. 강력한 직구가 변화구의 위력을 더하며 탈삼진은 지난 2일의 2배인 12개가 됐다. 수싸움으로 따낸 삼진이라기보다는 힘대 힘의 정면 대결에서 이긴 결과였다. 삼진 12개 모두 헛스윙 스트라이크 아웃이었다.

오타니의 호투가 계속되자 에인절스타디움에는 경기 중반부터 미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역사적인 ‘퍼펙트 게임’에 대한 기대감이었다. 하지만 오타니는 7회초 1사에서 마커스 세미앤에게 3루수와 유격수 사이를 뚫리는 좌전안타를 허용했다. 관중들은 퍼펙트 게임이 깨지자 이닝 중간임에도 기립박수를 쳤다. 오타니는 굳은 표정을 풀지 않고 차분히 로진백을 만졌다.

볼넷과 투수 앞 땅볼이 이어지며 2사 2, 3루. 타석의 맷 올슨은 침착하게 변화구를 골라내며 3볼-1스트라이크의 카운트를 만들었다. 여기서 오타니는 98마일짜리 직구를 스트라이크존 바깥쪽에 꽉 차게 제구하며 풀카운트를 만들었다.

올슨은 물론 경기장의 관중까지 모두가 스플리터가 날아올 차례임을 알고 있었다. 스포츠 전문매체 ESPN은 “이날 최고의 스플리터는 올슨을 상대로 던진 마지막 투구”라고 평했다. 오타니의 91구째 89마일 스플리터는 홈플레이트 앞에서 뚝 떨어졌고, 올슨의 방망이는 허공을 갈랐다. 경기 내내 조용하던 오타니가 오른 주먹을 불끈 쥐며 고함을 질렀다.

6-0 리드 상태에서 7이닝을 마무리한 오타니는 경기가 6대 1로 종료되며 승리투수가 됐다. 그는 타자로서 3홈런과 0.389의 타율을, 투수로서 2승에 2.08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게 됐다. 타석에 들어서면 홈런을 치고 마운드에서는 삼진쇼를 벌이는 오타니를 두고 미 언론은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다.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는 “이해하기 쉽게 말하자면, 오타니는 크리스 브라이언트(시카고 컵스), 카를로스 코레아(휴스턴 애스트로스), 매니 마차도(볼티모어 오리올스), 애런 저지(뉴욕 양키스)보다 많은 홈런을 쳤다. 동시에 맥스 슈어저(워싱턴 내셔널스), 노아 신더가드(뉴욕 메츠), 크리스 세일(보스턴 레드삭스), 코리 클루버(클리블랜드 인디언스)보다 많은 삼진을 잡았다”고 했다. 홈런왕보다 많은 홈런, 사이영상 수상자보다 많은 탈삼진을 기록 중이라는 놀라움이었다. 데드스핀은 “오타니는 이 별의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 확실하다”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