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려진 女노동 살피고, 억눌린 女욕망 조명… 미투시대 페미니즘 두 전시

입력 2018-04-10 05:05
기획전 ‘히든 워커스’전에 나온 미얼 래더맨 유켈리스의 퍼포먼스 ‘하트포드 청소’ 기록 사진. 하찮게 여겨지던 가사노동이 퍼포먼스를 통해 예술이 됐다. 코리아나미술관 제공
정금형 개인전 ‘스파 & 뷰티’전에 나온 설치 작품. 남성 마네킹의 턱수염과 가슴털이 있어야 할 자리에 목욕용 브러시를 심었다. 송은 아트스페이스 제공
코리아나미술관 15돌 기념 국제 기획전 ‘히든 워커스’
국내외 작가 11팀 참여, 성 고정 관념·사회 문제 현대미술 작품 활용해 비판

송은 아트스페이스 정금형 개인전 ‘스파 & 뷰티’
되바라진 방식으로 여성 부각… 때밀이 남자 마네킹 이용 발 마사지하는 퍼포먼스 압권


미술관 앞 계단. 원피스 차림의 젊은 여성이 양동이로 물을 들이부으며 계단 청소를 하는데 동작이 심상치 않다. 전시의 첫머리를 장식한 이 흑백 사진은 올해 79세인 미국 페미니즘 미술의 대표 작가 미얼 래더맨 유켈리스가 1973년에 행한 퍼포먼스를 기록한 것이다.

결혼과 출산 이후 반복되는 가사노동 때문에 작업할 시간을 갖지 못하자 위기감을 느낀 유켈리스. 급기야 ‘걸레질’을 공적 공간에서 했고, 이는 1인 시위를 넘어 예술이 됐다.

그로부터 45년이 지났다. 여성의 노동에 대한 인식, 여성의 삶을 바라보는 남성의 시선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다시 여성작가들이 나섰다. 이 문제에 대해 묻고 답하는 두 전시가 서울 강남에서 동시에 열리고 있는 것이다. ‘미투(#MeToo) 운동’의 와중이라 미술 작품을 통해 시대를 점검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먼저 강남구 언주로 코리아나미술관 개관 15주년 기념 국제 기획전 ‘히든 워커스(Hidden Workers)’. 국내외 작가 11팀이 참여해 1970년대부터 현재까지 여성의 노동이 사회 구조 내에서 차지하는 위치와 역할을 현대미술 작품으로 풀어냈다.

독일 듀오 작가 폴린 부드리와 레나트 로렌즈는 성 고정관념을 시각적 이미지로 전복하는 영상작품을 내놨다. 2009년 작 ‘혁명을 향한 매력’이라는 작품에선 확성기를 들고 ‘주부 군단 권리 선언’을 외치는 여성의 외모가 의외다. 덩치가 엄청 크고 목소리도 걸걸해 얼핏 전형적인 남성 이미지로 비친다.

조혜정과 김숙현은 콜센터 직원, 미용사, 승무원 등이 겪는 힘겨움을 시각화했다. 미용사로 분장한 무용수가 다리를 뒤로 높이 들고 머리 커트를 해주는 식의 퍼포먼스를 영상에 담았다.

김정은, 임윤경은 각각 미국에서 네일 아티스트, 아이 돌보미로 일한 자전적 경험을 작품에 녹였다. 여성으로서, 아시아인으로서 겪는 이중의 소외가 녹아 있다.

동선의 마지막은 책상 위에 지우고 싶은 문장들을 적어놓고, 관객들이 지우개로 지우도록 한 관객 참여형 퍼포먼스가 장식한다. ‘그들은 사랑이라 하고 우리는 무임 노동이라고 한다’ 같은 문장들. 전시를 찾은 ‘82년생 김지영’은 이를 지우며 어떤 생각을 할까. 걸레질 퍼포먼스와 지우개 퍼포먼스가 수미쌍관을 이루는 전시 방식을 통해 기획자는 예나 지금이나 세상은 크게 나아진 게 없다는 걸 보여주려는 듯하다. 6월 16일까지.

또 다른 전시인 압구정로 송은 아트스페이스의 정금형(38)의 개인전 ‘스파 & 뷰티’는 결이 좀 다르다. 페미니즘 전시라는 점에선 같지만, 억눌린 여성의 성적 욕망을 주제로 한다. 젊은 여성 작가 정금형은 아주 되바라진 방식으로 수동적 존재로 치부돼온 여성을 능동적 주체자로 바꿔버린다.

기존 작품이 그랬듯이 시시콜콜해 보이는 자신의 수집품을 작품에 활용해 그것이 신체와 갖는 관계에 주목한다. 이번엔 ‘때밀이 기구들’이다. 샤워 볼, 손톱 브러시, 발 브러시 등 런던에서 생활할 때 모았던 목욕용 브러시들을 아카이브처럼 전시했다. 하이라이트는 사물의 의인화다.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사물들이 남자로 의인화돼 있다. 이를테면 욕조 끝에 남자 마네킹이 부착돼 있다. 마네킹 가슴팍엔 무성한 털이 있는데, 실은 목욕용 발 브러시를 심은 것이다. 이 ‘때밀이 남자 인형’에 대고 발 마사지를 한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무용과 연극을 전공한 정 작가가 실제 이를 연기하는 퍼포먼스가 전시의 최고작이다. 5월 26일까지.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