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 읽기] 개혁 vs 파업·동맹휴업… 프랑스 ‘어게인 1968’ 될까

입력 2018-04-09 05:00
AP뉴시스
한 프랑스 시민이 지난 6일(현지시간) '그는 선택하고, 우리는 점거한다'고 쓰인 현수막이 걸린 파리 1대학 톨비악 캠퍼스 앞을 지나고 있다. 프랑스 대학생들은 정부의 대입제도 개편안에 맞서 동맹휴업을 벌이고 있다. AP뉴시스
프랑스 파리 서쪽 인근의 낭테르 대학 학생들은 딜레마에 빠져 있다. ‘정부의 교육개혁을 저지하기 위해 투쟁하면서 어떻게 기말고사도 잘 치를 것인가.’ 정치학 수업의 기말고사를 앞둔 이 대학 학생 안나엘 롬브는 “어느 시대든 젊은이들은 사회에 할 말이 있고, 싸우고, 도전하고, 요구해야만 한다”면서 투쟁 의지를 다졌다. 그는 프랑스에서 가장 큰 학생단체 전국대학생연합(UNEF) 간부다. 50년 전에도 낭테르대 학생들은 같은 말을 했었다.

친기업 성향의 중도 보수를 추구하는 에마뉘엘 마크롱(사진) 대통령의 개혁 드라이브에 프랑스 사회의 반발이 커지고 있다. 특히 1968년 5월 혁명 때처럼 노동계와 대학생들이 공동으로 맞서고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7일(현지시간) “마크롱이 취임 이후 최대 위기를 만났다”면서 “68년의 승리가 다시 올 수 있을지에 대한 엇갈린 시각이 존재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68혁명은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샤를 드골 정권은 경제적 풍요와 엄격한 보수주의의 엄호 속에서 10년째 이어지고 있었다. 여성들은 남편의 허락 없이는 예금통장조차 만들 수 없었을 정도로 보수적인 사회였다. 노조 운동이나 자유를 부르짖는 이들에 대한 사회적 탄압도 심했다. 특히 좌파 운동에 가담한 학생들에 대한 공권력의 감시 등으로 대학가에서는 캠퍼스에 진입한 경찰과 학생들의 충돌이 끊이지 않았다.

당시 투쟁은 노동자들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었다. 기록적인 숫자의 대학생들의 항거가 먼저 있었다. 낭테르대 학생들은 파리 한복판에서 경찰기동대를 향해 나뭇가지든 돌이든 닥치는 대로 던졌다. 800만명의 성난 노동자들이 학생들의 시위행렬과 합쳐졌다. 결국 대통령은 실각했고 학생들은 대학으로, 노동자들은 일터로 돌아갔다. 프랑스인들은 시민의 힘이 정치권력을 뒤흔들 수 있다는 것을, 그렇게 하면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마크롱 정권은 최근 여러 개혁안을 발표했다. 야당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국회의원을 30% 줄이는 정치개혁 입법안을 내놨고, 대학 자체의 학생선발권을 확대하는 대입제도 개편안, 노조원 혜택을 축소하는 내용의 철도 개혁안 등을 강행했다.

이에 철도공사(SNCF) 노조는 총파업으로 나섰고, 주요 대학들은 동맹휴업에 들어갔다. 특히 대학가에선 정부의 대입제도 개편이 프랑스의 평등주의 원칙을 깨고 엘리트주의를 도입하려는 것이라며 반발이 크다. 기존과 달리 고교 성적과 활동기록 등이 합격자 선발에 크게 영향을 미치도록 해 가난한 학생들에게 불이익을 주는 ‘개악안’이라는 비난이 빗발친다.

여기에 지난 대선에서 참패한 좌파 정당들이 합세했다. 좌파당 장 뤽 멜랑숑 대표는 “부자들의 대통령이 우리와 맞서려고 한다”면서 “우리에게 온 국가를 단결시킬 지혜가 있다면 우리가 최후의 승자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의 시위가 68년과 같을 수 없다는 시각도 분명히 존재한다. 시위에 나선 사람들의 이해관계가 모두 다르고 정부는 집권한 지 1년밖에 되지 않았다. 소르본 대학 캠퍼스에서 만난 인문대생 아냐는 “나는 개혁이 마음에 들지 않고, 마크롱은 독재자가 되려는 것 같다. 젊은이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위해 투쟁해야 한다”면서도 “하지만 지금은 68년 5월이 아니다. 사회적 맥락이 완전히 다르다”고 말했다.

정치학자 로랑 보빗은 “지금의 시위는 자신들이 패배한 지난해 선거의 결과를 번복하려는 좌파의 시도, 즉 리턴 매치”라면서 “마크롱이 집권한 지 1년밖에 되지 않은 상황에서 그에게 표를 던진 사람이든 그렇지 않은 사람이든 등을 돌릴 사람이 얼마나 될지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사람들은 68년의 현실을 잊었다. 그건 학생이나 노조만의 혁명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파업이었다”고 지적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