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심 달랐던 판단들
박근혜·최순실 1심 보면 ‘安 수첩’은 이재용 1심 따르고 ‘삼성 뇌물’은 李 2심에 가까워
▨ 박 前 대통령 항소 고심
변호사측 “의사 확인 후 결정” 일각선 “朴 포기할 수도”
▨ 대법 최종 판단에 달려
朴·崔·李 전원합의체 가능성 대법관 11월까지 4명 퇴임 최종 선고 시점 예측 못해
“항소심과 대법원에선 다른 판단을 해 주실 겁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지난 6일 징역 24년이 선고된 후 그의 국선변호인 강철구 변호사는 취재진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강 변호사는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판단이 가능하다”며 “(징역 24년은) 1심 선고일 뿐”이라는 말도 했다. 1심 형량이 상급심을 거치며 충분히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 측은 항소 여부를 고심하고 있다. 강 변호사는 8일 “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항소 의사를 전달받지 못한 상태”라며 “본인의 의사를 확인해 항소장 제출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선고 당일 박 전 대통령과 접견했던 유영하 변호사도 항소와 관련해선 별 다른 말을 듣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1심 국선변호인단은 박 전 대통령을 대신해 항소장을 낼 수 있다. 이후 박 전 대통령이 항소를 철회하려면 항소포기서를 내야 한다. 국선변호인단의 항소장 제출도 일단 박 전 대통령의 의사를 확인한 후에야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박 전 대통령이 항소를 포기할 가능성도 있다”는 전망도 일각에서 나온다. 검찰만 단독으로 항소하고 박 전 대통령은 그간 고수해 온 ‘법정 불출석’ 태도를 계속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경우 항소심에선 검찰이 다투는 부분에 대해서만 심리가 진행된다. 박 전 대통령에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하급심이 맞춘 퍼즐, 무엇이 다른가
박 전 대통령의 18가지 혐의는 ‘국정농단’이란 전체 퍼즐의 핵심이다. 그의 지시·개입 여부 등은 뇌물공여 혐의를 받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강요’ 혐의로 기소된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 ‘문화계 블랙리스트’ 혐의로 기소된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등의 유무죄와 엮여있기 때문이다.
국정농단 피고인들은 각각 재판 진행 상황이 다르다. 비선실세 최순실씨의 항소심 재판은 이제 막 시작됐고, 이 부회장과 김 전 실장 재판은 항소심까지 끝난 뒤 대법원에 계류된 상태다. 하급심 재판부가 서로 다른 판단을 내린 부분에 대해 대법원은 하나의 결론을 도출해야 한다. 국정농단이란 퍼즐을 맞추는 건 결국 대법원이 되는 셈이다.
특히 동전의 앞뒷면과 같은 뇌물 수수·공여죄에 대해 대법원은 같은 판단을 내려야 한다. 이 부회장의 1·2심 재판부는 최씨 딸 정유라씨 승마 지원 혐의(뇌물)에 대해 상반된 판단을 내렸다.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독대 상황이 기록된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의 업무수첩을 증거로 채택할지도 다르게 봤다.
박 전 대통령과 최씨의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는 안 전 수석의 업무수첩에 관해선 이 부회장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의 판단을 따랐다. “안 전 수석 수첩에 적힌 내용을 사실로 인정하진 못해도 이런 대화가 있었다는 간접 증거로는 볼 수 있다”고 봤다.
반면 삼성 뇌물 혐의에 대해선 이 부회장 2심 재판부(서울고법 형사13부)의 관점에 가까웠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삼성테크윈 매각 등 경영권 승계 현안은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2차 독대(2015년 7월 25일) 이전에 이미 이뤄진 일이고 이 부회장 경영권 승계를 위한 명시적·묵시적 청탁이 있었다고 볼 증거도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문 전 장관은 국민연금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찬성하도록 압박한 혐의로 2심까지 유죄를 선고받았다. 문 전 장관의 2심 재판부(서울고법 형사10부)는 “박 전 대통령의 지시도 있었다고 보인다”고 판시했다. 같은 사안을 놓고도 재판부별 판단이 다른 것이다.
대법원 최종 판단 시점은?
박 전 대통령의 유무죄는 항소심에서 한 번 더 평가받게 된다. 최씨 항소심을 진행 중인 서울고법 형사4부에 배당돼 함께 심리(병합)될 가능성이 높다. 1심 변론을 맡았던 국선변호인단은 재판부의 판단에 따라 유지될 수도 있고 변경될 수도 있다.
대법원은 이 부회장과 김 전 실장 사건 등을 각 소부에 배당하고 심리를 진행 중이다. 이 부회장 사건 등 하급심의 판단이 엇갈렸던 사건에 대해선 대법관 사이에도 격론이 오갈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적 관심 사항인 박 전 대통령과 최씨, 이 부회장 사건 등 3건은 전원합의체에 회부될 가능성이 높다.
대법원의 최종 선고 시기에도 변수가 많다. 오는 8월 고영한 김창석 김신 대법관이 퇴임한다. 박 전 대통령과 최씨의 항소심이 3개월 안에 끝난다고 해도 8월 선고까지는 물리적 시간이 촉박하다. 11월엔 김소영 대법관이 퇴임한다. 새 대법관의 인선 절차가 차질 없이 이뤄져도 전원합의체 심리 기간은 길어질 가능성이 높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
그래픽=이석희 기자
李 뇌물·安 수첩… 조금씩 어긋난 하급심 퍼즐 조각
입력 2018-04-09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