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명여대 모임 10명 참여… 평소 손가락질 받을까봐 못했던 이야기 쉽게 내놔
서로 위로하고 용기 얻어… 삼선동 카페서 7∼8명 모여
연령층 다양… 남성회원도
서울 용산구 숙명여대에서는 매주 페미니즘 독서모임 ‘페미올로기’가 열린다. 수업 때 다룬 페미니즘 고전서 내용이 어려워 시작한 스터디 그룹이었는데 미투(#MeToo) 운동의 생활학습장으로 바뀌었다. 회원들은 ‘이것도 미투가 될 수 있겠다’며 각자 겪은 일들을 털어놨다. 모임의 공동회장을 맡고 있는 계란빵(예명·27)씨와 잎사귀(예명·24)씨는 6일 “평소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 아니냐고 손가락질 받을까봐 참아왔던 이야기들이 모임에선 쉽게 나왔다”며 “별것 아니라고 치부한 성차별적 말들과 행동들이 엄연한 피해였다는 사실을 알자 위로가 됐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두 사람이 만든 독서모임은 어느새 회원 10명(대학원생 7명, 학부생 3명)의 모임이 됐다. 회원들은 “‘메갈리아야(여성혐오에 맞서 남성혐오를 주장하는 공격적 페미니즘 커뮤니티)?’란 소리를 들을까봐 못한 이야기를 이곳에선 자유롭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서지현 검사 성추행 폭로를 시작으로 미투 운동이 한국사회 각 분야로 번지면서 일상의 소소한 변화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젠더 감수성을 키우기 위한 공부 모임이 자발적으로 생겨났고 페미니즘을 보는 사회적 시선도 달라졌다. 서 검사 폭로 이후인 지난 2월 1일부터 3월 12일까지 교보문고 페미니즘 서적 판매량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약 139% 증가했다.
서울 성북구 삼선동의 카페 희섬정에서 만난 송나(30·여)씨는 이 카페 주인이자 페미니즘 독서모임인 ‘나의 페미니즘’을 만든 사람 중 한 명이다. 송씨는 지난해 4월 대학원생 김민지(26·여)씨와 함께 카페에서 모임을 시작했다. 2주에 한 번씩 7∼8명 정도 회원이 모여 토론한다. 연령대는 20대부터 40대까지 다양하다. 남성 회원도 있다.
김씨는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페미니즘 서적을 읽으며 공부했는데 더 많은 사람과 깊게 나누고 싶었다”며 “송씨에게 카페에서 독서모임을 열자고 제안했고 흔쾌히 받아줬다”고 웃으며 말했다. 회원들 삶에 변화도 생겼다. 간호사로 일했던 이민화(36·여)씨는 최근 간호사연대에서 활동한다. 이씨는 “간호사로 일하며 힘들었던 이유가 내가 나약해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라는 걸 깨달았다”며 “모임이 없었다면 이런 생각을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페미니즘 독서모임을 찾는 남성도 늘고 있다. 서울 광진구에서 만난 문성(가명·30)씨도 그중 하나다. 문씨는 “여성들과 달리 위협 받지 않고 페미니즘 공부를 할 수 있기 때문에 내가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건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니다”며 “박수 받고 싶지 않다. 반성하는 마음만 들 뿐”이라고 말했다.
문씨가 운영 중인 페미니즘 독서모임 퇴페미 회원은 20명이다. 문씨 외 다른 남성 회원도 있다. 문씨는 “일상에서 페미니즘 관련 발언을 하기가 아직은 힘들다”면서도 “이 모임에서는 가감 없이 말할 수 있으니까 일종의 완충역할을 한다”고 밝혔다. 여성학 공개강의, 강남역 살인사건 1주기 집회 참여 등의 활동도 한다. 문씨는 “페미니즘이 여성뿐 아니라 남성에게도 도움 된다는 주장에 동의한다”며 “남성에게 억압으로 작용하는 남자다움이라는 통념과 수직적 위계문화가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조민아 기자 minajo@kmib.co.kr
“페미니즘 공론화… 나 아닌 모두의 문제죠”
입력 2018-04-07 0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