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간 초대형 뇌물 수사 지휘한 하버드 로스쿨 출신 엘리트 법관
反룰라 시위대의 최고 스타 등극… 90년대 伊 부패 수사를 벤치마킹
룰라 지지율 1위… 혼란 불가피
‘반(反)부패 영웅’이 ‘서민 대통령’을 끝내 거꾸러뜨렸다. 브라질의 스타 판사 세르지우 모루(45)가 대선 주자 중 지지율 선두를 달리던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72) 전 대통령 체포 명령을 내리면서 정국이 급변하고 있다. 모루 판사는 장장 4년간 매달려온 초대형 반부패 수사로 반정부 세력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일간 폴라데상파울루에 따르면 모루 연방 1심 판사는 5일(현지시간) 룰라 체포 명령을 내렸다.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게 해달라는 변호인단의 요청을 연방대법원이 기각한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아 내려진 명령이다. 룰라는 지난해 1심 재판에서 뇌물수수와 돈세탁 등 혐의로 징역 9년6개월을 선고받은 뒤 올해 초 2심 재판에서 징역 12년1개월을 선고받았다.
모루 판사는 6일 오후 5시까지 연방경찰에 자진 출두하라고 통보했지만 룰라는 이를 거부하고 금속노조 지도부 사무실에서 밤을 보냈다. 그러나 자진 출두 불복 여부와 상관없이 룰라의 10월 대선 출마는 체포 명령으로 사실상 물 건너갔다.
모루 판사는 2014년 3월부터 일명 ‘세차(Car wash) 작전’으로 불리는 이번 반부패 특별수사를 진두지휘하면서 브라질 국민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룰라를 비롯해 탄핵된 지우마 호세프 전 대통령과 돈세탁업자 알베르토 유세프, 국영 정유기업 페트로브라스 등의 치부를 뚝심 있게 파헤쳤다. 지금까지 조사받은 인원만 232명, 기소 인원 179명, 유죄 판결을 받은 이가 93명에 이른다.
전문가들은 모루 판사가 1990년대 이탈리아 정계에 피바람을 몰고 왔던 ‘마니풀리테(깨끗한 손)’ 수사를 모델로 삼았다고 분석한다. 당시 이탈리아 검찰이 언론을 활용해 대중의 관심을 지속시켜 수사의 동력으로 삼았던 걸 차용했다는 설명이다. 실제 모루 판사는 2016년 호세프가 현직에 있을 때 룰라를 수석장관으로 삼아 면책특권을 주려 한 정황이 담긴 통화내용을 언론에 흘려 여론의 폭발적인 반향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미국 하버드 로스쿨 출신 엘리트인 모루 판사는 1996년부터 연방법원 판사로 일하면서 미국 사법제도 시스템을 브라질 사법체계에 적극 도입했다. 2016년에는 미 경제지 포천이 선정한 세계의 돋보이는 인물 13위에 올랐다. 미 주간지 타임은 그를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위 명단에 포함했다. 블룸버그는 그의 수사가 브라질 재계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금융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위로 꼽았다.
일각에서는 모루 판사가 반정부 여론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을 이유로 향후 정치에 입문할 가능성도 제기한다. 다만 본인은 아직까지 그런 의지를 드러낸 적이 없다. 스스로도 언론 앞에 직접 모습을 드러내거나 인터뷰하길 꺼려하는 편이다.
모루 판사의 칼끝은 룰라에서 그치지 않을 전망이다. 김영철 부산외대 중남미지역원 HK교수는 “브라질 국민들은 이번 수사가 호세프 탄핵과 룰라 체포를 거쳐 미셰우 테메르 현 대통령에게까지 번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테메르 대통령은 이미 지난해 부패 혐의로 연방대법원 재판에 회부되기 직전까지 갔다가 의회 표결에서 간신히 기사회생한 바 있다.
룰라의 체포가 확정되면서 브라질 대선은 혼돈 속으로 빠져들게 됐다. 폴라데상파울루 설문조사에 따르면 룰라가 대선에 출마하지 않을 경우 투표를 포기하겠다고 밝힌 브라질 국민이 32%에 달한다. 이 경우 지지율 2위를 달리는 극우 후보 자이르 보우소나루 기독교사회당 의원의 당선이 가장 유력하다. 다만 지지율이 과반에서 한참 모자라 결선투표를 거칠 가능성이 높다. 룰라가 소속된 노동자당(PT)에서는 페르난두 아다지 전 상파울루 시장이 대신 출마할 것이 유력하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
룰라 출마 무산시킨 브라질 ‘반부패 영웅’
입력 2018-04-07 0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