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대출 이상급증… 평소의 3~4배, DSR 제외돼 ‘인기’

입력 2018-04-07 05:05

1분기 은행별 1조 안팎 증가… 전세값 상승세 꺾이면서 월세서 전세 전환 많아져
규제 대상서 통째로 빠져… 전세 사는 다주택자도 대출 받는데 아무 지장없어
은행도 주담대 대체 마케팅… 한은 “유심히 모니터링 중”
대출 때 보증보험 가입 권장


전세대출이 치솟고 있다. 주요 은행의 전월세 보증금 대출 취급실적이 평소의 3∼4배 이상 늘어난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가 담보인정비율(LTV), 총부채상환비율(DTI), 총체적상환능력비율(DSR)을 강화하면서 가계부채를 억제하는 와중에 벌어지는 ‘이상 현상’이다. 전세대출은 유독 이 모든 대출 규제를 면제받는 쪽으로 설계됐다.

이상한 전세대출 급증

국민일보가 6일 주요 은행의 자체계정 전월세 보증금 대출 취급실적을 취합한 결과, 올해 1분기(1∼3월)에 은행별로 1조원 안팎의 증가세를 보였다. 지난해 매월 1000억원 정도이던 전세대출 증가세가 올해 들어 급격하게 뛰어오른 것이다. 신한은행 전세대출(잔액 기준)은 지난달 말 현재 13조9117억원으로 석 달 새 9000억원 가까이 불어났다. 우리은행 역시 1조5000억원 가량 증가폭을 키웠다. KEB하나은행도 1조원 넘는 증가세를 기록했다.

‘3월 말 통계’ 작업이 덜 끝난 KB국민은행의 경우 지난해 11월 말과 올해 2월 말을 비교해보니 8000억원 가량 전세대출이 증가했다. 여기에다 올해 1월 23일부터 비대면 전월세 보증금 대출에 뛰어든 인터넷전문은행 카카오뱅크는 지난달 말 현재 대출 약정액이 1355억원에 이르렀다.

이런 은행 자체계정 전세대출에는 주택금융공사 등 공공기관이 취급하는 전세대출이 빠져 있다. 통상 ‘은행 자체계정’과 ‘공공기관 대행 전세대출’의 비중이 5대 5라는 점을 감안하면 전체 전세대출 총액은 더 많이 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왜 폭증하나

원인은 복합적이다. 이번 주 부동산114에서 집계한 결과 서울의 전세가격은 전주 대비 0.05%, 신도시는 0.07%, 경기·인천은 0.04% 각각 떨어졌다. 전세가격이 하락한다 해도 2∼3년 전보다는 많이 오른 수준이기 때문에 큰 폭의 소득 증가가 없다면 추가로 전세대출을 받을 수밖에 없다. 또 전세가격 상승세가 꺾이며 월세에서 전세로 전환하는 사례가 많아져 대출로 보증금 증가분을 메우곤 한다. 카카오뱅크의 모바일 전세대출 영업으로 주요 은행들이 창구 대신 ‘모바일 비대면 전세대출’을 늘리는 등 손쉽게 돈을 빌릴 수 있게 되면서 ‘대출심리’를 자극한 측면도 있다.

다만 전세대출이 급증한 핵심 원인은 역시 ‘규제 피해가기’다. 전세대출은 정부의 핵심 가계부채 억제책인 ‘DSR 산정’에서 빠져있다. DSR은 분모에 연간 소득, 분자에 모든 부채의 원리금을 넣고 계산한다. 전세대출 받을 때는 원금과 이자 둘 다 계산에서 뺀다. 다른 대출을 추가로 받을 때도 이미 받은 전세대출의 이자만 고려한다.

정부가 ‘공공의 적’으로 지목한 다주택자도 실제 전세살이를 시작하면 전세대출을 받는데 전혀 지장이 없다. 전세대출의 최고 한도도 ‘전세가격 9억원에 대출 5억원’으로 높게 설정돼 있다. 전세대출은 주택담보대출만큼 금리가 낮기 때문에 다른 대출이 막힌 다주택자들이 재개발·재건축 투자를 위한 수단으로 악용하기도 한다. 이른바 ‘갭투자’다. 은행 쪽에서 보면 황금알을 낳았던 주택담보대출 영업이 압박을 받게 되니까 대체 수단으로 전세대출 마케팅을 강화한 여파도 있다.

한국은행 금융안정국 관계자는 전세대출 급등 현상에 대해 “유심히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주택담보대출 규제를 피해서 대출 우회로로 전세대출을 이용한 측면도 있고, 월세에서 전세로 돌리는 부동산 시장 변화도 있다”고 진단했다.

안심해도 될까

전세는 집값이 계속 오르리란 예상을 바탕으로 집주인이 다주택 보유 부담을 안고 세입자에게 집을 내어주는 제도다. 예상대로 집값이 오르면 집주인이 과실을 따가지만, 집값이 떨어져 전세가격 이하로 내려가면 세입자가 더 큰 피해를 본다. 전세보증금을 제때 돌려받지 못해 이사를 가지 못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시중은행들은 전세대출 때 보증보험 가입을 권유한다. 전세대출이 1억원이라면 0.128% 즉 12만8000원을 보증회사에 내면 나중에 집주인이 ‘나 몰라라’ 해도 보증기관이 책임지고 전세보증금을 돌려준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전세 만기 1년 전까지는 가입해야 전세보증금 반환보증의 혜택을 누릴 수 있다”고 조언했다.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

그래픽=안지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