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뜰폰, 보편요금제 대안인가 희생양인가

입력 2018-04-09 05:05



정부가 보편요금제 등 통신비 절감정책을 추진하면서 ‘원조 통신비 절감정책’인 알뜰폰의 존재가 주목받고 있다. 보편요금제의 대안으로 떠오를 것이란 시각과 희생양이 될 것이라는 시각이 혼재한다. 이에 알뜰폰 업계는 ‘보편요금제급’ 요금제를 내놓으며 “기존 알뜰폰 시장을 활성화시켜 통신비 부담을 낮추자”고 제안하고 나섰다.

알뜰폰은 ‘이동통신 재판매 사업(MVNO)’의 애칭이다. 알뜰폰은 이동통신 3사인 SK텔레콤과 KT, LG유플러스의 통신망을 빌려 이용자에게 이통 3사 요금제보다 20∼40% 저렴한 통신 상품을 제공한다. 주력 상품은 LTE 데이터 1GB, 음성통화 100분을 제공하는 1만원대 후반 요금제다.

알뜰폰은 이통 3사처럼 설비투자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같은 품질의 서비스를 싸게 팔 수 있다. 사업자들이 천문학적인 자본금 없이도 자유롭게 통신 시장에 드나들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미국, 유럽에선 알뜰폰을 이동통신 시장 경쟁을 유도하는 수단으로 주목하고 있다.

국내 알뜰폰 가입자 수는 꾸준히 늘었다. 지난해 가입자수는 약 752만명으로 전체 이동통신 가입자의 12% 수준이다. 이동통신 서비스를 이용하는 10명 중 1명은 알뜰폰 가입자인 셈이다.

이미 이통 3사에서 알뜰폰으로 갈아탄 가입자도 많다.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KTOA)에 따르면 지난해 통신 3사에서 알뜰폰으로 갈아 탄 가입자는 70만8567명, 알뜰폰에서 이통 3사로 옮긴 가입자는 63만8435명이다. 알뜰폰이 이통 3사로부터 가입자 7만132명을 뺏어온 셈이다. 올해 1∼3월에는 알뜰폰이 이통 3사로부터 1만8754명을 데려왔다.

국내 알뜰폰 사업이 시작된 건 2011년 7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알뜰폰 업체는 “이통 3사의 통신망을 도매가로 빌려 기존 통신요금보다 30% 가량 저렴한 서비스를 고객에게 제공하겠다”며 출범했다. 이후 알뜰폰 사업자수는 꾸준히 증가해 현재 43개사까지 늘었다. 사업자는 이통 3사 자회사인 SK텔링크·KT M모바일·미디어로그와 대기업 계열사 CJ헬로모바일, 중소사업자 에넥스텔레콤, 프리텔레콤 등으로 구성된다.

알뜰폰의 성장은 정부가 통신비 절감정책 일환으로 알뜰폰 업계를 지원해준 것에 힘입었다. 정부는 이통 3사로부터는 가입자 한 명당 약 460원씩 받는 전파사용료를 알뜰폰 사업자에게는 받지 않고 있다.

아울러 정부는 매년 이통 3사와 협의해 알뜰폰 사업자의 통신망 이용료인 망 도매대가를 인하해왔다. 2014년 1분당 39.33원이던 음성통화 도매대가를 지난해 1분당 26.4원으로 30% 이상 내렸다. 데이터 도매 대가는 같은 기간 1MB당 141.9원에서 4.51원으로 내렸다. 또 유통망이 부족한 알뜰폰 업체를 위해 전국 우체국에서 알뜰폰 신규 가입 업무를 대신 처리해주도록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통신비 절감’을 공약으로 내세운 문재인 정부가 ‘빅3’ 이통사를 상대로 선택약정 요금할인 확대와 보편요금제 도입을 추진하면서 알뜰폰은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특히 지난해 9월 정부 압박에 이통 3사가 선택약정 요금할인폭을 20%에서 25%로 올리면서 알뜰폰은 직격탄을 맞았다. 이통 3사 요금이 저렴해지자 고객들이 알뜰폰에서 이통 3사로 옮겨간 것이다. 알뜰폰은 지난해 9∼12월 내리 이통 3사에 가입자를 뺏겼다.

이같은 상황에서 알뜰폰 업계는 보편요금제까지 도입되면 업계가 고사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이통 3사가 정부 압박에 못 이겨 보편요금제를 비롯한 저가요금제를 확대하기 시작하면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온 알뜰폰이 설 자리를 잃게 된다는 주장이다. 보편요금제는 월 2만원대 요금에 약 200분의 음성통화와 1GB 가량의 데이터를 제공하는 저가요금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오는 6월 보편요금제 도입을 주 내용으로 하는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알뜰폰의 입지가 좁아지자 사업을 접는 사업자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말 대형마트 홈플러스가 알뜰폰 사업에서 발을 뺐다. 다른 알뜰폰 사업자 이마트도 현재 사업 철수를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마트는 이미 4월 1일부터 알뜰폰 신규 가입 업무를 전면 중단했다.

이마트 관계자는 “정부의 통신요금 인하 정책으로 알뜰폰의 가격 경쟁력이 크게 떨어졌기 때문에 일단 신규 가입을 중단하고 사업을 재정비하려는 것”이라며 “아직 철수를 완전히 결정한 것은 아니지만 사업 포기를 포함한 모든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설명했다.

정부의 통신비 절감정책과 별개로 알뜰폰의 성장세가 둔화하고 있는 건 업계가 풀어야 할 숙제다. 전체 알뜰폰 가입자 수를 보면 400만에서 500만명 돌파까지는 7개월이 걸렸지만, 600만에서 700만명 돌파까지는 14개월이 걸렸다.

사업자들이 만성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도 고민거리다. 알뜰폰 전체 사업자의 영업 손실은 2013년 908억원, 2014년 965억원, 2015년 511억원, 2016년 317억원, 지난해 270억원이다. 알뜰폰 선두 업체인 CJ헬로모바일마저도 알뜰폰 사업에서 손해를 보고 있다.

이에 따라 알뜰폰 업계는 ‘보편요금제급’ 요금제를 내놓으며 새로운 활로를 찾고 있다. 미디어로그는 최근 편의점 GS25와 연계한 ‘GS25 요금제’ 2종을 출시했다. 이 요금제는 월 1만7500원에 음성통화 100분, LTE 데이터 6GB를 제공하거나 월 2만2000원에 음성통화 100분, LTE 데이터 10GB를 제공한다.

CJ헬로모바일은 옥션과 G마켓에서 월 1만9800원에 LTE 데이터 10GB, 음성통화 100분을 제공하는 요금제를 판다. 프리텔레콤도 같은 조건의 서비스를 월 2만2000원에 제공한다. 다만 이 요금제들은 특정 홈페이지에서 구매할 수 있거나 이용도중 서비스 조건이 바뀔 수 있는 프로모션 상품이다.

이밖에도 알뜰폰 업계는 신용카드사와 제휴해 통신요금·음식점·커피전문점 할인 혜택을 늘려 고객을 끌어모으고 있다. 아울러 보안·렌털 등 새로운 사업으로 진출하며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다.

이석환 알뜰폰협회장은 “정부가 보편요금제 도입에만 집중할 게 아니라 이용자가 알뜰폰의 저가요금제를 이용할 수 있게 지원했으면 좋겠다”며 “알뜰폰 업계가 당장은 어려워도, 통신비를 아끼려는 고객들이 더 많이 알뜰폰으로 눈길을 돌리면 상황이 반전될 것”이라고 말했다.

오주환 기자 johnny@kmib.co.kr

그래픽=안지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