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뇌물액수 늘었지만 ‘경영권 승계’ 청탁은 불인정

입력 2018-04-06 18:54 수정 2018-04-06 22:03
직접뇌물죄인 승마지원만 인정 … 삼성 뇌물 여전히 최대 쟁점
미르·영재센터 등 제 3자인 기관에 지급된 돈 뇌물 불인정


박근혜 전 대통령 1심 선고가 마무리됐지만 삼성 뇌물은 여전히 최대 쟁점으로 남아있다.

박 전 대통령 재판부는 6일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가 삼성으로부터 72억원 상당의 뇌물을 받았다고 판단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항소심 재판부는 이 부회장이 박 전 대통령과 최씨에게 건넨 뇌물이 36억여원이라고 봤다. 현재로서는 인정된 수수액이 공여한 것보다 2배나 많은 셈이다. 결국 국정농단 사태의 핵심이었던 삼성 뇌물은 상고심까지 판단을 지켜보게 됐다.

재판부는 지난 2월 최씨 선고 때와 마찬가지로 삼성의 경영권 승계 작업을 인정하지 않았다. “삼성의 경영권 승계에 대한 언론보도나 전문가들의 언급을 자주 볼 수 있다”면서도 “형사책임을 논하는 법정에서는 증거에 의해 그 존부(存否)가 엄격히 증명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 부회장 항소심 재판부와 같은 논리다.

이와 달리 이 부회장 1심 재판부는 “포괄적 현안으로서 삼성의 경영권 승계에 대한 묵시적 청탁이 있었다”고 판단했었다. 이 부회장의 인정 뇌물액도 1심에서 89억원이었다가 항소심에서는 36억원으로 대폭 줄었다. 징역 5년을 선고받고 수감됐던 이 부회장은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고 풀려났다.

박 전 대통령 재판부도 미르·K스포츠재단이나 영재센터 등 제3자인 기관이나 단체에 지급된 돈 220억여원은 뇌물이 아니라고 봤다. 제3자 뇌물수수죄의 경우 부정한 청탁이 있었다는 것을 입증해야 하는데 부정한 청탁의 내용인 경영권 승계 작업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뇌물죄도 성립하지 않는다는 논리다.

대신 박 전 대통령을 통해 최씨가 받은 승마지원금 72억여원은 뇌물로 봤다. 직접 뇌물죄는 부정한 청탁이 없어도 대통령의 직무가 삼성과 관련성이 있는지만 보면 된다. 이 부회장 항소심 판결보다 액수가 늘어난 것은 36억원 상당의 고급 마필 3마리도 “실질적인 소유권이 삼성이 아닌 최씨에게 있다”며 뇌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롯데와 SK그룹에게 받거나 요구한 돈 159억여원은 뇌물죄가 성립한다고 봤다. 두 기업의 경우 면세점 사업권 재취득 등 부정청탁의 대상이 있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최씨가 공범으로 적시되지 않은 박 전 대통령 혐의 5개도 대부분 유죄 판결을 받았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 및 실행, 노태강 등 문화체육관광부 공무원 사직 강요, 청와대 문건 유출, CJ 이미경 부회장 퇴진 지시 등이다.

블랙리스트 혐의와 관련해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이 국정 최고책임자로서 책임을 피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또 대통령이 임면권을 갖고 있는 1급 공무원이라도 객관적, 합리적 근거가 있어야 사직시킬 수 있다고 봤다.

박 전 대통령이 최씨의 사적인 부탁을 받고 최씨 회사가 대기업으로부터 광고·납품·용역계약을 받을 수 있도록 직권을 남용한 혐의도 상당수 유죄로 결론 났다.

이가현 기자 hyun@kmib.co.kr

그래픽=안지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