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1시간, 비틀스 관련 음악만” MBC 새 라디오

입력 2018-04-08 23:28
최근 서울 마포구 MBC 사옥에서 만난 조정선 PD. 그는 10일부터 MBC FM4U를 통해 밴드 비틀스와 관련된 음악만 소개하는 '조 PD의 비틀즈라디오'를 선보인다.곽경근 선임기자
조정선, 연출·DJ 맡아 혼자서 진행
조 PD “멤버들 솔로로 전향한 후 발표한 곡들도 내보낼 계획… 국내 비틀스 마니아들 거점 기대”

MBC는 지난달 29일 라디오 개편 소식을 전하는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눈길을 끈 대목은 자료 말미에 등장한 이런 내용이었다. “음악 프로그램 ‘조 PD의 비틀즈라디오’도 주목할 만하다. 단 하나의 아티스트만을 위한 전문 프로그램은 우리나라에서 전무후무한 일이다.”

자료만 보면 영국 밴드 비틀스(프로그램명에 비틀스를 ‘비틀즈’라고 표기한 건 ‘비틀즈’라는 발음이 대중에게 더 익숙하기 때문이라고 한다)의 음악만 트는 프로그램을 선보이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그런데 이게 가능한 걸까. 산술적으로 따져도 이 프로그램은 말이 안 되는 방송이다.

비틀스가 발표한 노래는 총 282곡이다. 프로그램은 MBC FM4U를 통해 10일부터 매일 한 시간(오전 3∼4시) 동안 전파를 탄다. 만약 매회 12곡을 내보낸다고 가정해보자. 24일만 지나도 ‘재고’가 동날 수밖에 없다. 24일 전에 틀었던 음악을 다시 내보내야 한다. DJ는 특정 노래를 소개하면서 내뱉은 ‘멘트’를 반복해야 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도대체 누가, 무슨 이유에서 이토록 무모한 방송을 기획한 것일까. 최근 서울 마포구 MBC 사옥에서 이 프로그램 연출자이자 DJ로도 활약할 예정인 조정선(58) PD를 만났다. 그는 “비틀스의 음악만 내보내는 건 아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런 설명을 덧붙였다.

“비틀스 멤버들이 솔로로 전향한 뒤 발표한 음악도 틀 거예요. 예컨대 폴 매카트니가 그동안 출시한 노래만 계산해도 800곡이 넘어요. 조지 해리슨은 400곡 정도 되고, 존 레넌도 300곡이 넘죠. 링고 스타는 200곡 정도예요. 다른 가수들이 부른 비틀스 노래도 많아요. 밴드의 대표곡인 ‘예스터데이’만 해도 3000번 넘게 리메이크 됐으니까요.”

프로그램이 ‘탄생’할 수 있었던 배경은 의외로 단순했다. 개편을 앞두고 열린 회의에서 PD들은 두서없이 아이디어를 쏟아냈다. 조 PD는 “비틀스와 관련된 음악만 트는 방송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참석자들은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렇게 편성이 확정됐다.

조 PD는 “국내에도 비틀스 음악을 카피하는 밴드가 제법 있을 것”이라며 “이런 분들을 초대해 작은 공연을 열거나 대화를 나누는 코너도 구상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프로그램이 한국의 비틀스 마니아들이 한데 모이는 거점이 됐으면 한다”고 했다.

그 옛날 음악다방 DJ가 그랬듯 조 PD는 방송에 필요한 모든 걸 혼자서 도맡을 예정이다. 직접 코너를 기획하고 원고를 쓰고 진행을 하고 음악도 틀겠다는 것이다. 그는 “혼자 도저히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 때까진 1인 체제를 유지할 것”이라며 미소를 지었다.

그렇다면 비틀스의 수많은 명곡 가운데 첫 방송의 오프닝을 장식할 노래는 어떤 곡일까. 그는 “첫 곡으론 ‘렛 잇 비’를 틀 생각”이라고 했다. “1992∼1994년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연출한 적이 있어요. 그때 청취자들을 상대로 비틀스의 어떤 곡을 좋아하는지 설문을 진행하곤 했는데, 언제나 1등을 차지한 게 ‘렛 잇 비’였거든요.”

1984년 MBC에 입사한 그는 ‘배철수의 음악캠프’ 외에도 ‘이문세의 별이 빛나는 밤에’ ‘2시의 데이트’ ‘FM 영화음악’ 등을 연출한 베테랑 PD다. 2009년부터 2013년까지는 ‘조 PD의 새벽다방’이라는 프로그램을 연출하면서 직접 진행도 맡았었다.

그가 생각하는 비틀스 음악의 매력은 무엇일까. 조 PD는 “비틀스는 실험적인 시도를 굉장히 많이 한 팀”이라며 “팝의 문법을 다시 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라고 설명했다.

“비틀스도 물론 그 이전에 등장한 흑인 음악이나 록 음악에서 영향을 받았어요. 하지만 이 팀은 완벽하게 새로운 음악을 들려줬죠. 사람마다 음악적인 취향은 제각각일 겁니다. 록을 좋아할 수도, 팝이나 재즈를 좋아할 수도 있죠. 하지만 음악을 많이 듣다 보면 결국엔 누구나 비틀스를 좋아하게 돼요. 왜냐면 비틀스의 음악이 대중음악의 뿌리이니까요.”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사진=곽경근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