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론에 그친 간호사 처우개선… “근본적 문제해결 어렵다”

입력 2018-04-08 18:03
예비 간호사들의 나이팅게일 선서 모습. 간호사들의 과중한 업무해소 방안이 의료행정의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국민일보DB

한림대 성심병원 간호사 춤 강요 사태, 서울아산병원 간호사 태움, 서울대병원 신규간호사 열정페이 등 최근 간호사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에 사회적 관심을 받고 있다. 특히 간호사들은 휴가, 식사시간, 시간 외 근무를 보장받지 못하는 것은 물론 의료용품도 개인 사비로 구입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에 정부가 직접 간호사 인력 확충과 열악한 노동환경 개선에 직접 팔을 걷고 나섰다. 정부가 간호사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 직접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만큼 의료라는 공공성과 환자 생명을 다루는 특성을 감안해 고심 끝에 대책을 마련했다는 것이 의료현장의 견해다.

◇식사 시간 30분…성희롱과 폭언=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 지난해 12월 18일부터 올해 2월 24일까지 전국 54개 병원 1만1662명의 조합원을 대상으로 ‘의료기관내 갑질과 인권유린 실태’를 조사한 결과, 식사시간을 100% 보장받는 경우는 25.5%에 그쳤다. 응답자의 49.9%가 일부만 보장받는다고 답했고, 전혀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는 응답도 22.9%였다. 보건의료노조 나영명 정책국장은 “근무부서에 따라 식사시간이 5분인 경우도, 30분인 경우도 있다. 작년 실태조사를 보면 식사하러 가는 이동시간과 식사시간을 포함한 시간이 30분 이내라고 응답한 비율이 70%였다”고 지적했다. 성희롱과 성폭력, 언어폭력도 심각한 수준으로 나타났다. 간호사의 13.2%, 간호조무사의 7.4%가 성희롱·성폭행을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병원근무 중 욕설이나 반말, 무시, 모욕적 언사 등 폭언을 경험한 사례는 절반을 넘는 56.2%에 달했다.

본인 업무 외에 부당한 업무를 강요받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병원광고물을 아파트단지나 지하철역에서 배포하면서 환자를 유치하는 활동에 동원된 경험이 있다는 응답자가 3.5%였다. 재단이사나 병원장, 임원 등 병원 고위직으로부터 집안일이나 개인 업무를 지시받았다는 의견은 3%로 조사됐다. 또한 환자 퇴원 시 두고 간 약도 퀵으로 직접 비용을 지불하며 보내주거나 환자가 잃어버린 틀니 금액까지 지불한 사례도 있다. 병원이 직원들의 의사와 무관하게 특정 정치인에 대한 정치 후원금을 납부하도록 강요한 경험(10.1%)자도 있었다.

◇정부가 나선 간호사 노동환경 개선=보건복지부는 지난 3월 간호사 근무환경과 처우개선을 위한 대책을 발표했다. 핵심은 인력부족 문제 해결과 인권침해 시 바로 퇴출 등의 강력한 처벌조항 마련이다. 복지부는 “간호사 태움문화 등 직장 내 괴롭힘 문제가 인력부족에 따른 과중한 업무부담에서 야기된다는 지적에 따라 의료현장 내 간호사 부족문제 해결에 적극 나설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정책으로 ▶신규인력 10만명 추가 배출 ▶간호사 근무환경 개선을 통한 의료기관 활동률 제고 ▶유휴인력 재취업 확대 등이 추진된다.

구체적으로 태움, 성폭력 등 인권침해 방지를 위해 간호사 인권센터(간호협회)를 설립하고, 신고·상담 접근성을 높여 주기적인 인권침해 실태를 조사한다. 피해사례 신고·접수 시 법률자문, 성폭력 상담 등 구제서비스를 연계한다. 의료인 간 성폭력, 직장 내 괴롭힘 등 인권침해 행위를 금지하고 위반할 경우 면허정지 등 처분근거 마련을 위한 의료법 개정도 추진한다. 이는 의료인 간 인권침해가 환자안전에도 영향을 준다는 점을 고려한 조치다. 보건복지부 곽순헌 의료자원정책과장은 “가해자와 피해자는 의료인에 한정하고, 직무 관련성과 범위를 명확하게 구분해 벌금, 면허 정지, 면허취소까지 가능하도록 하는 처벌규정을 마련 중에 있다. 의료기관 내 인권침해 대응체계 구축여부를 의료기관 평가인증지표에 포함시킬 것”이라고 설명했다.

엄마 간호사를 위해 일·가정의 양립이 가능하도록 건강보험공단의 임신·출산정보를 연계한다. 정부는 출산휴가 미부여, 육아휴직 사용률 부진, 부당해고 등 법을 위반할 소지가 높은 의료기관을 선별해 지도·감독한다. 병원협회, 간호협회, 고용부의 대체인력채용지원협의체를 통해 출산·육아 등에 따른 인력공백 발생 시 대체인력 채용을 지원하기로 했다.

◇간호사 노동환경 개선 현장에서는=대한간호사협회는 정부 대책에 환영의 뜻을 밝혔다. 간호협회는 “보다 적극적인 인센티브 및 디스인센티브 정책이 필요하다. 간호사 근무환경과 처우 개선을 위해 의료기관 경영자들의 적극적인 근무환경 개선 노력과 간호사 고용 확대가 필요하다.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 의료기관들의 근로기준법 준수가 우선돼야 한다”고 주문했다. 한 중소병원 간호과장 A씨는 “간호사들의 고충을 정부와 언론에서 이야기를 시작했다는 점에서 많은 간호사가 환영한다. 그러나 현장에서 기대하는 바는 없다. 3분의 1이나 지켜질까 하는 의문도 있고, ‘이건 좋아질 거다’하고 눈에 띄는 정책도 없다”며 “간호사 처우와 관련해 병원이 아무것도 안 한 것처럼 얘기가 나오고 있지만 병원에서도 간호부에서도 맞춰가려 노력했다. 그러나 결국 간호사 수가 부족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특히 A씨는 “연차를 자유롭게 사용하고 싶어도 간호사 수가 부족하면 불가능하다. 병동에 간호사가 없으면 연차를 돈으로 보상해 주는 것이 다반사”라며 “아이, 육아, 분만 때문에 경력이 단절되는 경우도 많다. 병원 내에서 육아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면 3교대 간호사도 마음놓고 근무할 수 있다. 우리 병원도 간호사 어린이집 논의를 했었지만 운영 측면에서 어려움이 있어 미뤄졌다”고 토로했다.

대학병원에서 근무하는 신입간호사 B씨는 “개인적으로 정부의 간호사 처우개선안은 의료현장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본질적인 문제 해결안이 아니라고 생각해 큰 기대가 없다”고 평가했다. 그는 “폭언과 성추행은 사람마다 기준도 다르고 애매한 상황이 많을 거다. 입증하기 어려운 경우도 대부분일 것”이라며 “태움 문화는 사실 인력부족의 문제가 크다고 본다. 인력충원 대책 없이 개인 처벌로만 태움 문화를 없애는 것은 효력이 없어 보인다. 또 면허정지라는 것 때문에 선배 간호사가 후배 간호사를 제대로 교육하지 못하면 그 피해는 환자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간호사 수가 1∼2명 정도로 적은 의원급에게 이번 개선안은 먼 나라 얘기다. 간호협회 관계자는 “사실 의원급에서는 수술을 하는 곳도 적고 간호사 수도 적기 때문에 병원 근무 간호사들에게 주력할 수밖에 없다. 복지부 내 TF팀이 구성되면 의원급 근로 간호사들에 대한 개선점도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의사협회 관계자도 “의원급에서 간호사들 처우 개선을 위해 위원회를 꾸린다든가 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다만 1년에 한 번씩 하는 성교육이나 성추행 처벌 강화에 대해 고민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이번 개선안은 야간근무 수당 등 의원급 의료기관에 필요없는 부분을 제외하곤 모든 의료기관에 해당된다. 인권침해 사안과 관련해 의원급에서 근무하는 간호사는 고용노동부나 간호협회 인권침해 센터를 이용할 수 있다”고 답했다.

유수인 쿠키뉴스 기자 suin92710@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