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파란 하늘이 사라졌다. 하여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면 새삼 반갑다. 이들이 저 우울한 미세먼지를 정화하기 때문이다. 허나 인간이 빚어낸 대기오염을 언제까지 자연이 수습하고 치유해줄까. 아직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 옛날에는 무료였던 맑은 공기와 물, 그러나 이제 맑은 공기를 마시려면 매우 많은 사회적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초미세먼지는 1급 발암물질이다. 정기적으로 대량 구입해 사용하는 KF 80 마스크. 새벽부터 하루 종일 돌아가는 공기청정기. 이제 아침이 되면 미세먼지 농도를 본능적으로 검색하고 있다.
언젠가 방문했던 중국 베이징의 하늘은 영화의 한 장면처럼 너무나 음산하고 기이했다. 거대한 화생방 훈련 현장과 같은 회색 안개를 탈출하기 위해 힘들게 약국을 찾아 마스크를 구입했다. 초미세먼지가 가득한 베이징의 하늘은 적어도 우리에겐 아주 먼 미래의 풍경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는 우리의 오늘이 되었다. 은밀한 살인자인 미세먼지의 공격 앞에 아이들과 어르신들의 건강이 염려된다. 산모들의 건강이 더욱 염려된다. 세계의 굴뚝 중국, 석탄화력, 디젤정책, 그리고 고등어 미세먼지론 앞에서 우리들은 혼란스러워한다. 오염된 공기를 피해 피난을 가는 환경난민의 여정은 결국 일상의 귀환으로 마무리되는 낭만적 일탈이 아니다. 오히려 가만히 있으면 가족이 더 큰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절실한 판단이 그들에게 있다.
맑은 공기와 물을 마시며 사는 인생 자체가 엄청난 축복인 시대가 됐다. 현대판 바이오사이드 참사인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 대한 공분과 미세먼지포비아의 핵심에는 깨끗한 물과 공기에 대한 기대, 고달픈 좌절이 있다. 우리의 몸과 마음 모두 아프다. 우리는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 베이징의 잿빛 하늘, 이제 오래된 미래가 아니라 우리의 고통스러운 일상이 되어 버렸다. 에코의 섭리를 헤아리는 애니미즘은 원시신앙의 퇴행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고대하는 희망이 됐다. 이제 미세먼지는 단군 이래 심각한 사태 가운데 하나다.
2018년 봄 한국은 미세먼지의 끈질긴 역습과 함께 전국적으로 쓰레기 대란을 겪고 있는 중이다. 인간의 욕망이 자연에게 폭력과 고통을 가했다. 이제 그 조롱당한 자연은 부메랑처럼 인간을 향해 반격한다. 우리는 인간 욕망의 어리석음을 직시해야 한다.
사이버네틱스와 인공지능을 디자인한 그레고리 베이트슨은 생태계의 ‘신’이 결코 피조물에게 조롱당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생명과 마음의 논리를 깊이 들여다본 사상가의 통찰이다. 그러나 ‘자연’은 인간이라는 피조물에게 조롱당했으며, 이제 ‘인간’ 또한 자연에게 조롱당하고 있다. 1945년 첫 핵실험은 인류세의 출발을 뚜렷하게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그 후 현 인류는 6번째로 대멸종한다. 그간 역대 대멸종의 원인은 자연이었지만 6번째 대멸종의 원인은 인류다. 미래의 인류는 과거의 지층에 남아 있는 방사성 물질,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 플라스틱, 콘크리트와 같은 화석 흔적을 분석하며 멸종한 과거의 인류를 추적한다. 멸종한 과거의 지질시대는 바로 ‘인류세(Anthropocene)’로 불린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속담이 있다. 우리 세대가 사라져도 다음 세대는 우리를 대신해 이 개똥밭에 구를 수 있다는 상상은 그나마 우리를 위로한다. 허나 다음 세대가 이 지상에서 계속 지속될 것이라는 기대가 붕괴되는 파국과 멸종의 시나리오는 우리 문명의 그림자를 아프게 드러낸다. 인류의 생태계 파괴로 인한 대재앙의 시나리오를 거스르는 지혜가 우리에게 없을까. 신과 인간과 자연은 더욱 더 조화롭게 연결돼야 한다. 신학과 인간학과 자연학은 지속 가능한 미래를 향한 겸손한 대화와 연대를 이루어야 한다. 특히 생명의 문법을 지혜를 모아 더불어 직조해야 한다. 자연이 신음하면 자연의 요소인 인간도 신음할 것이다. 신 또한 조롱당하지는 않을지언정, 분명 신음하는 인간과 자연을 보며 아파할 것이다.
전철(한신대 교수·신학과)
[바이블시론-전철] 조롱당하는 인간
입력 2018-04-06 0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