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활용 대란에 경비원 ‘이중고’… “분리수거는 입주자 몫”

입력 2018-04-05 05:01

주민들 까다로워진 분리배출 경비원에게 떠넘기고 불평
“분리수거는 입주자의 몫 경비원에게 맡겨선 안돼”


아파트 경비원들이 재활용 쓰레기 대란으로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주민들은 까다로워진 분리배출을 경비원에게 떠넘기며 불평하고, 폐기물 수거업체도 경비원들에게 사실상 재활용품 분류를 떠맡기고 있다.

재활용 쓰레기 대란 이후 아파트 단지에선 주민 항의와 문의가 경비원에게 집중되고 있다. 4일 서울 동대문구 한 아파트에서 만난 경비원 한모(72)씨는 “주민들에게 분리수거 방법을 안내해도 번거롭다며 불평만 돌아온다”며 “결국 과거처럼 다른 재활용품과 함께 폐비닐도 수거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재활용 쓰레기 때문에 주민이 경비원을 폭행한 사건도 있었다. 경기도 김포경찰서는 김포의 한 아파트에서 경비원(66)의 얼굴을 수차례 주먹으로 때린 주민 A씨(70)를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 A씨는 지난 1일 재활용품을 분리수거하는 중에 경비원이 “이제 비닐을 버리면 안 된다”고 제지하자 홧김에 폭행한 것으로 조사됐다.

폐기물 회수업체도 아파트관리사무소에 “분리배출 제대로 해 달라” “이물질 제거된 비닐만 수거해 달라”고 아쉬운 소리를 한다. 분리배출이 안 돼 폐비닐이 수거되지 않으면 바빠지는 것은 관리사무소와 소속 경비원이다. 한 회수업체 관계자는 “이물질이 들어간 폐비닐을 아직도 모아놨던데 절대로 안 가져갈 생각”이라며 “아파트 관리사무소장이 알아서 할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경비원이 분리수거장을 직접 지키며 감시해야 하는 상황으로 몰리고 있다. 경비원이 하루 종일 분리수거장만 지킬 수도 없지만 이 때문에 주민과 시비에 휘말릴 위험도 있다. 서울 중랑구의 한 아파트 경비원은 “비닐 쓰레기는 이물질을 없앤 후 버려 달라고 공지했지만 잘될지 모르겠다”며 걱정했다.

경비원의 분리수거 부담은 이전에도 있었다. 동대문구 한 아파트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평상시에도 분리수거장에 몰래 쓰레기를 버리거나 일반 비닐봉지 안에 음식물쓰레기를 넣고 버리는 경우가 있어 분리수거는 원래 경비원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업무”라며 “이번 대란도 음식물이나 오물이 묻어 있는 비닐을 제대로 거르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했다”고 말했다.

안성식 노원노동복지센터장은 “분리수거는 원래 입주민들이 스스로 해야 할 일인데 서비스 차원에서 경비원들이 돕는 것”이라며 “고유 업무도 아닌 일을 맡기면서 무리한 요구를 하거나 책임을 떠넘겨선 안 된다”고 말했다.

이택현 기자 alle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