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사느라 ‘가계 여윳돈’ 사상 최저… 집 산 덕에 ‘나랏돈’ 사상 최대

입력 2018-04-05 05:01

작년 가계 자금 51조 그쳐… 1년새 19조나 줄어들어
주식·채권 투자도 줄여 가계 장기대출 23조 감소
정부 곳간 10조 늘어 49조… 외환보유액 역대 최대치


지난해 가계의 여유자금이 사상 최저치인 50조9000억원에 그쳤다. 신규 주택 구입 확대가 원인이다. 가계와 반대로 정부는 부동산 거래 관련 세수 확대에 힘입어 여윳돈이 역대 최고치인 49조2000억원에 달했다. 지난해 11조원 규모의 슈퍼 추가경정예산안을 편성해 재정을 풀었는데도 그렇다.

한국은행은 4일 2017년 자금순환 잠정치를 발표했다. 국내총생산(GDP)이 경제주체의 생산과 소득을 숫자로 나타낸 것이라면, 자금순환은 경제주체 사이 돈을 주고받은 흐름을 보여주는 통계다. 여기서 가계는 국제 비교를 위해 고안된 ‘가계 및 비영리단체’를 가리킨다. 일반 가계에 학교 병원 등 비영리단체와 소규모 개인사업자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이 가계가 예금 채권 보험 등으로 굴린 돈(자금운용)에서 금융기관 대출금(자금조달)을 뺀 여윳돈 성격의 순자금운용이 50조9000억원을 기록해 2009년 통계 작성 이래 가장 적었다. 2016년과 견줘 19조원 감소했다. 한은은 “부동산 등 실물자산 투자가 늘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실제 GDP상 주거용 건물 건설 투자액은 2016년 90조5000억원에서 지난해 107조3000억원으로 16조8000억원 증가했다. 여유자금을 줄여가며 주택 구입에 몰입한 결과다.

정부 사정은 반대였다. 지난해 여유자금이 49조2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10조원 확대됐다. 원인은 세금을 많이 거둔 탓인데, 특히 부동산 관련 양도차익에 따른 소득세 법인세가 많이 늘었다. 여기서 정부는 공기업 부문을 제외한 일반 정부 개념이다.

가계는 채권 주식 펀드 투자자금도 줄였다. 정부는 곳간이 빵빵해지자 국채 발행 물량을 줄였고, 이는 가계의 채권 투자액 감소를 불러왔다. 또 지난해 주식시장 호황으로 일부 차익실현 매도 물량도 있었다. 가계의 채권 투자액은 1년 전보다 11조7540억원이 빠졌고, 지분증권 및 펀드 투자액 역시 2조8090억원 줄었다.

정부의 강력한 주택담보대출 옥죄기 정책에 가계의 장기차입금이 92조7000억원에 그쳤다. 1년 전과 비교하면 23조3000억원이나 줄어들었다. 대신 신용대출 등이 늘어난 풍선효과가 나타났다. 가계의 단기차입금은 26조8000억원으로 소폭 늘어났다.

한편 지난달 말 기준 외환보유액은 3967억5000만 달러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외환보유고 4000억 달러 시대가 눈앞이다. 한은이 달러 약세에 대비해 기타 통화로 분산 투자를 했고, 그 통화의 환산액이 커진 덕을 봤다.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

그래픽=이은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