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에 부메랑 된 방송법… 애써 바꾼 3사 사장 또 교체?

입력 2018-04-05 05:01

발의 때 넣은 부칙에 발목… 3개월 내 이사진 교체해야
이사진에 야당 몫 늘려 野 동의 없이는 선출 불가능
야당은 ‘8월 前 통과’ 입장


더불어민주당이 야당 시절 발의했던 방송법 개정안에 발목이 잡혔다. 야당 시절 야당의 권한을 대폭 강화한 개정안을 발의했는데, 여당이 되고 나니 처리가 마뜩잖은 분위기다. 민주당 개정안이 통과되면 정권교체 이후 새로 선출된 공영방송 3사 사장을 3개월 이내에 새로 뽑아야 하고, 야당 추천 이사진의 동의까지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4월 임시국회의 발목을 잡고 있는 민주당 방송법 개정안은 박홍근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가 2016년 민주당과 정의당, 당시 국민의당 의원 162명의 서명을 받아 발의했다. 핵심 내용은 다수결이었던 이사회의 공영방송 사장 선출을 특별다수제(이사진 3분의 2 의결)로 바꾼 것이다. 이사회 구성도 여당 추천 7인과 야당 추천 6인으로 조정했다. 현행 방송법에는 이사회 구성은 여당 추천 인사의 수가 야당 추천 인사보다 2배(6대 3) 많다. 방송법이 개정되면 야당의 동의 없이는 사장 선출이 불가능하다. 민주당은 “앞으로는 정권이 공영방송을 장악할 일은 없다”고 말하고 있지만 막상 개정안 처리는 부담스럽다.

게다가 민주당 개정안이 그대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 KBS·EBS·MBC 사장을 모두 새로 뽑아야 한다. 개정안 부칙에 ‘이사회와 집행기관을 법 시행 3개월 이내에, 법 규정에 의해 구성해야 한다’고 못 박았기 때문이다. EBS와 MBC는 각각 지난해 9월과 12월 진보 성향인 장해랑 최승호 사장을 선출했다. KBS도 양승동 사장 후보자가 최근 국회 인사청문회를 마친 상황이다. 정권 출범 이후 선출한 공영방송 사장을 모두 교체해야 한다. 발의 당시 고대영(KBS) 김장겸(MBC) 사장을 겨냥해 삽입한 부칙이 부메랑이 돼 돌아온 셈이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개정안의 핵심인 사장선출제 변경에 대한 반감이 많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한 민주당 의원은 4일 “개정안이 통과되면 앞으로는 야당의 반발을 무마할 수 있는 사장 후보자를 찾아야 한다”며 “공영방송 사장 공백이 장기화될 수도 있고, 특별다수제를 고려하면 정말 무미건조한 인물만 사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때문에 시민단체 등 제3의 이사 추천 기구를 포함시켜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야당은 8월 전까지 개정안을 반드시 통과시키겠다는 입장이다. 전임 사장의 잔여 임기를 이어받은 EBS 장 사장과 KBS 양 후보자의 임기가 올해 11월까지인데, 방송법이 개정되지 않으면 여권 성향의 사장이 2020년 총선 때도 방송사를 이끌게 돼 야당에 불리한 정치 환경이 조성될 것이라는 우려에서다.

민주당은 일단 방송법 개정안 처리에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법안 동시 처리를 조건으로 내건 상태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방송법 개정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공수처법 등 우리가 필요한 법안을 꼭 처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야당은 민주당의 이런 태도가 어이없다는 반응이다. 오신환 바른미래당 원내수석부대표는 “자기들이 발의한 법안에 야당이 반대하는 법안을 연계해 처리를 막는 행태는 정말 철면피 같은 짓”이라고 비판했다.

최승욱 신재희 기자 apples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