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는 공책에 만화 그리는 게 취미였다. 고등학교 2학년 때는 짝꿍을 따라 화실에 갔다가 선생님으로부터 ‘소묘 천재’ 소리를 들었다. 선생님의 권유로 석고상을 그렸다가 재능을 발견한 것. 미대입시 준비 1년여 만에 홍익대 동양화과에 합격한 소녀는 화가의 꿈을 키우며 20대를 보냈다. 하지만 꿈의 날개는 30대가 되기도 전에 꺾이고 말았다. 스물아홉 살 되던 해 아버지가 병환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면서 오랜 방황이 시작됐다.
3일 경기도 파주 새빛우리교회(이우용 목사)에서 만난 사모 최미애(53)씨는 “당시 내 모습은 태풍으로 지붕이 날아가고 지지대마저 무너져버린 집을 보는 듯했다”고 회상했다. 새 출발을 위해 중국에 있는 미술대학원 입학을 준비하며 한어수평고시(HSK·중국어능력시험) 3급도 취득했지만 꿈을 향한 기지개는 오래가지 못했다.
최씨는 “대학원 입학을 앞두고 공황장애가 찾아오면서 먹지도 자지도 못하는 신세가 됐다”며 “강한 줄로만 알았던 나의 나약함을 깨닫고 이후 5년 넘게 기도·치유집회를 찾아다니면서 끊임없이 신앙을 담금질하는 광야 생활이 이어졌다”고 덧붙였다.
광야 생활은 남편 이우용 목사를 만나며 마침표를 찍었다. 파주 문발동에서 가정교회로 목회를 시작해 상가교회를 개척하며 사역을 이어갔다. 사역을 시작한 지 10년이 흘렀지만 주일예배 출석 성도는 20명 남짓. 그중 절반이 인근 요양원에서 생활하는 어르신들이다. 나머지는 한 부모 가정의 청소년, 지적장애인들이다. 결코 녹록지 않은 사역이었지만 작은 것 하나라도 내어주고 귀한 복음의 씨앗을 뿌린다는 마음으로 섬김을 이어갔다.
개척교회 사역의 갖은 어려움을 이겨내 오던 2015년 7월 어느 날 최씨는 또 한 번 좌절했다. 유방암 3기. “멍울이 8㎝까지 커져 양쪽 가슴을 절개해야 한다”는 진단이 나왔다.
“충격을 받았지만 주저앉아 있을 순 없었어요. 투병 직전 하나님께 서원한 게 있었거든요. 제게 주신 달란트로 복음을 전하는 화가가 되기로 한 거죠. 그때부터 ‘손이 아닌 가슴으로 붓을 잡겠다’는 심정으로 캔버스 앞에 앉았습니다.”
최씨는 8차례의 항암치료와 수술로 이어지는 고통 속에도 22년 만에 다시 잡은 붓을 놓지 않았다. 아름다운 창조세계를 모티브로 민들레 붓꽃 등을 그리며 페이스북에 한 점씩 작품세계를 펼쳐냈다. 1년 동안 그린 작품은 30여점. 지난달엔 서울 인사동에서 생애 첫 개인전을 열고 미술관장 추천으로 ‘2018 홍콩 아트페어’에 작품이 출품되는 기쁨도 맛봤다.
그는 “전시회를 찾아온 한 부부가 ‘작품을 보며 힐링이 됐다’고 얘기해주던 순간을 잊을 수 없다”며 “하나님께서 남은 삶의 지향점을 보여주신 것”이라고 했다. 작가로서 작품으로 얻은 수익에 대한 서원도 소개했다.
“판매수익 10의 9조를 주님 영광 위한 사역에 쓰기로 약속했습니다. 지금까지의 수익금도 액자값을 빼곤 저희보다 어려운 상황에 처한 곳으로 보냈어요. 전도하다 아이들 컵라면 사줄 돈이 없어 고민하는 교회, 하루하루 임차료를 걱정해야 하는 교회 같은 곳들이에요. 이제 막 작가로서의 첫걸음을 내디뎠을 뿐입니다. 앞으로의 걸음도 주님께서 붓길로 인도하시겠지요.”
파주=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사진=신현가 인턴기자
그래픽=이영은 기자
[미션&피플] 파주 새빛우리교회 최미애 사모
입력 2018-04-05 0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