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대통령 “이념·적대의 그늘 걷어내는 게 4·3의 교훈”

입력 2018-04-03 21:12
여야 지도부가 3일 제주 4·3 평화공원에서 열린 70주년 4·3 희생자 추념식에서 나란히 앉아 있다. 오른쪽부터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 박주선 바른미래당 공동대표, 조배숙 민주평화당 대표, 이정미 정의당 대표,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 뉴시스

“보수·진보 정의롭게 경쟁 공정하게 평가 받는 시대로”
“아직도 낡은 이념 눈으로 4·3 바라보는 사람들 있어” 행방불명 표석 처음 참배
文 “책임지고 모든 노력” 유족들 “고맙수다” 박수


문재인 대통령이 3일 제주 4·3 사건 70주년 추념식에서 이념 갈등을 종식하고 정의·공정의 시대를 열자고 제안했다. 4·3 사건을 둘러싼 논란 등 낡은 이념적 갈등을 끝내고 새로운 차원의 국민 화합 시대를 열자는 취지다.

문 대통령은 4·3 사건에 대한 보수진영의 비판을 낡은 이념 공세로 규정했다. 문 대통령은 추념사에서 “아직도 낡은 이념의 굴절된 눈으로 4·3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다. 아직도 대한민국엔 낡은 이념이 만들어낸 증오와 적대의 언어가 넘쳐난다”고 비판했다. 이어 “4·3에서 빨갱이로 몰렸던 청년들이 (한국전쟁에서) 죽음을 무릅쓰고 조국을 지켰다”며 “이념은 단지 학살을 정당화하는 명분에 불과했다”고 지적했다. 4·3 사건을 좌파의 무장폭동으로 보는 시각이 왜곡됐다는 비판이다.

문 대통령은 “대한민국은 정의로운 보수와 정의로운 진보가 정의로 경쟁하고, 공정한 보수와 공정한 진보가 공정으로 평가받는 시대가 돼야 한다”며 “삶의 모든 곳에서 이념이 드리웠던 적대의 그늘을 걷어내고 인간의 존엄함을 꽃피울 수 있도록 노력해 나가자”고 말했다.

문 대통령 언급은 지역 갈등에 이어 뿌리 깊은 이념적 갈등도 해소해야 한다는 인식에서 나왔다. 청와대 관계자는 “통상적으로 국민 화합을 지역주의 타파로만 바라보지만 문 대통령은 낡은 이념 갈등도 해소하자고 제안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고개를 들고 있는 진영 논리도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된다. 보수진영이 정책적 대안 제시보다는 진영 논리에 기대 보수 결집만 노리고 있다는 인식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추념식은 ‘슬픔에서 기억으로, 기억에서 내일로’라는 주제로 진행됐다. 다양한 추모공연도 펼쳐졌다. 제주도민인 가수 이효리씨는 시인 이종형의 ‘바람의 집’과 이산하의 ‘생은 아물지 않는다’, 김수열의 ‘나무 한 그루 심고 싶다’를 낭독했다. 배경음악은 작곡가 김형석씨가 연주했다. 4·3 유족 50명으로 구성된 4·3평화합창단은 제주도립합창단, 제주시립합창단과 함께 ‘잠들지 않는 남도’를 합창했다.

문 대통령이 추념사에서 정부 차원의 지원을 약속하자 희생자 유족 등은 10여 차례의 박수로 화답했다. 일부 참석자는 “고맙수다”라고 외쳤다. 추념식에는 4·3 생존 희생자와 유족 등 1만5000여명이 참석했다.

문 대통령은 추념식이 끝난 후 대통령으로서는 처음 위패봉안실을 방문했다. 봉안실에는 4·3 사건 희생자의 위패가 마을 단위로 분류돼 있다. 양조훈 4·3평화재단 이사장이 “한 마을에서 537명의 희생자가 발생하기도 했다”고 말하자 문 대통령은 “한 마을에서요?”라고 반문했다. 이어 술잔에 술을 부어 선흘리 마을 위패 앞에 놓았다. 방명록에 ‘통곡의 세월을 보듬어 화해와 상생의 나라로 나아가겠습니다’라고 적었다. 문 대통령은 왼쪽 가슴에 4·3 사건 희생자를 기리는 동백꽃 배지를 달았다.

강준구 박세환 기자 eye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