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DJ 진상규명·盧 사과·MB 재단·朴 기념일… 마침내 ‘명예회복·보상’

입력 2018-04-04 05:01
문재인 대통령이 3일 제주 4·3평화공원에서 열린 70주년 4·3 희생자 추념식에서 희생자 양두봉씨 유족과 악수하며 위로하고 있다. 현직 대통령이 4·3 행사에 참석한 것은 2006년 노무현 전 대통령 이후 두 번째다. 뉴시스
文 대통령 “완전한 해결 약속… 중단·후퇴하는 일 없을 것
국가 폭력 다시 한번 깊은 사과”
김대중, 진상규명 작업 본격화… 노무현, 정부 차원 첫 사과
이명박, 평화재단 설립… 박근혜, 국가기념일로 격상
李·朴, 지지층 의식 추념식 불참


문재인 대통령이 제주 4·3 희생자 추념식에 참석해 4·3 사건의 ‘완전한 해결’을 천명했다. 김대중정부에서 진상조사와 명예회복 요구가 공식화된 이후 20여년간 보혁(保革) 갈등에 휘말렸던 4·3 사건의 진실을 밝히고, 정부의 배상·보상 문제도 매듭짓겠다는 뜻이다.

문 대통령은 3일 오전 제주 4·3평화공원에서 열린 70주년 추념식 추념사에서 “저는 오늘 4·3의 완전한 해결을 향해 흔들림 없이 나아갈 것을 약속한다”며 “더는 4·3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이 중단되거나 후퇴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4·3의 진실은 어떤 세력도 부정할 수 없는 분명한 역사의 사실로 자리 잡았다는 것을 선언한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1948년 11월 17일 선포된 제주도 계엄령, 중산간 마을을 중심으로 한 ‘초토화 작전’, 연좌제 등을 언급하며 4·3 사건을 국가권력의 폭력으로 규정했다. 보수 진영의 ‘무장 폭동’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국가 폭력으로 말미암은 모든 고통과 노력에 대해 대통령으로서 다시 한 번 깊이 사과드린다”며 “진상을 제대로 밝혀 희생된 분들의 억울함을 풀고 명예를 회복하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문 대통령은 국가 차원의 배·보상과 국가트라우마센터 건립 등 후속 법적 조치를 위해 국회와 논의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4·3 추념식에 현직 대통령이 참석하고 직접 사과한 것은 노무현 전 대통령 이후 두 번째다.

4·3 사건은 1947년 3월 1일 경찰이 시민을 상대로 발포한 것을 계기로 48∼54년 제주에서 발생한 무력 충돌로 인해 민간인들이 희생당한 사건이다. 신고를 받아 정부가 집계한 피해자는 1만4028명(사망 1만715명, 행방불명 3171명, 후유장애 142명)이다. 실제로는 3만명에 육박할 것으로 추정된다. 4·19 혁명 직후 국회 차원의 조사가 시작됐지만 이듬해인 61년 5·16 쿠데타로 군사정권이 들어오면서 무위에 그쳤다.

본격적인 진상규명 작업이 시작된 것은 김대중정부 출범 이후다. 새정치국민회의 대선후보 시절 김대중 전 대통령이 4·3 사건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1999년 12월 16일 국회가 ‘제주 4·3 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4·3 특별법)’을 통과시켰고, 2000년 제주 4·3 위원회가 출범했다. 위원회는 2000년 9월 조사에 착수해 2003년 10월 진상조사 보고서를 발표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3년 4·3 위원회 건의를 받아 처음으로 정부 차원의 사과 성명을 발표했다. 이명박정부 시절인 2008년 4·3평화재단이 설립됐고, 박근혜정부는 2014년 4·13 추념일을 국가기념일로 격상시켰다. 하지만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은 집권 후 지지층을 의식해 추념식(위령제)에는 불참했다.

앞으로 4·3 사건에 대한 정부 차원의 성격 규명도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노 전 대통령은 2003년 ‘4·3 사건’으로 표현했지만 문 대통령은 이날 ‘4·3’으로만 지칭했다. 피해자들은 4·3 사건을 ‘4·3 항쟁’ ‘제주민중항쟁’ 등으로 부르고 있다.

문 대통령의 추념사에 보수 야당은 혹평을 쏟아냈다. 장제원 자유한국당 수석대변인은 “정권이 역사마저 규정지으려는 발상”이라며 “낡은 이념의 틀로 역사를 가두려 하고 있다”고 맹비난했다.

강준구 박세환 기자 eyes@kmib.co.kr

그래픽=공희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