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비원이 비닐봉지 묶음 뜯어 하나하나 더러운 것 선별작업
업체 “수거하라는 말 못 들어” 환경부 ‘합의’ 발표에 의구심도… 과대포장·비닐 사용 규제 나서야
환경부가 폐비닐·페트병·폐스티로폼 등 재활용 쓰레기가 정상 수거된다고 밝혔지만 현장에선 혼란과 불편이 계속됐다. 폐비닐 수거를 거부당한 아파트가 속출했고 수거 재개 의사를 밝힌 업체들도 깨끗한 용품만 받기로 하면서 갈등이 이어졌다.
국민일보가 3일 서울시내 아파트 단지 12곳을 살펴본 결과 서울 구로구 H아파트, 동작구 H아파트, 서대문구 D와 S아파트, 서초구 Y아파트, 영등포구 K아파트, 종로구 K아파트 등 7곳에서 재활용 수거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나머지 5곳 중에서 성북구 H아파트는 수거업체가 찾아왔지만 “더러운 비닐이 들어있다”며 수거를 거부했고 4곳은 수거일이 아니어서 수거 재개 여부를 확인할 수 없었다. 주민들은 대부분 분리수거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전달받지 못해 애꿎은 피해자가 생기기도 했다.
구로구 H아파트 주차장 한쪽에는 지난 1일부터 모아놓은 깨끗한 폐비닐이 그대로 쌓여 있었다. 담당 수거 업체가 연락을 끊었다고 한다. 아파트 관리소장 김모씨는 “언제까지 쌓아 둘 수는 없지 않느냐”며 “다시 수거하기로 합의했다고 하던데 어찌된 영문인지 수거업체 관계자가 묵묵부답이라 답답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서대문구 S아파트의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업체가 수거일에 오지 않아 경비원들은 비닐이 잔뜩 담긴 대형 봉투 10여개를 분리수거장 한쪽에 모아뒀다.
성북구에서 가장 세대수가 많은 돈암동 H아파트 분리수거장은 수거일인데도 폐비닐이 그대로 쌓여있었다. 이 아파트 경비원 이모씨는 “평소에는 별다른 검사 없이 가져가던 재활용 업체들이 꼼꼼하게 보더니 더러운 비닐이 있다며 가져가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6개가 넘는 커다란 봉투 묶음을 뜯어서 오염된 비닐을 골라내야 하는 것은 경비원들의 일이 됐다. 이씨가 비닐을 다시 분류하는 와중에도 한 입주민은 내용물이 들어 있는 비닐봉지를 재활용 비닐 칸에 버리고 갔다. 이씨는 “내가 담당하는 270가구가 배출하는 쓰레기를 혼자 관리하는데 주민이 협조해주지 않으면 수거단계부터 걸러내는 게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쓰레기 수거 업체들이 비닐과 스티로폼을 수거하지 않기로 했다’고 공지한 게시물이 여전히 게시돼 있는 곳도 많았다. 종로구 K아파트, 서대문구 D아파트, 서초구 E아파트의 엘리베이터 등에는 비닐과 스티로폼을 종량제 봉투에 버리라는 안내문도 붙어있었다.
수거업체 관계자들은 환경부가 재활용처리업체를 선별해 비닐 등의 분리수거를 협의했다는 데 의구심을 나타냈다. 중랑구와 구로구 일대에서 활동하는 한 수거업체 관계자는 “48개 업체와 협의했다고 하지만 하청 수거업체들에는 전혀 전달이 안 됐다”며 “혹시나 싶어 근처의 다른 업체들과 연락해봤지만 전달받은 곳은 하나도 없었다”고 말했다.
다른 업체 관계자는 “각 아파트에 분리 수거된 비닐엔 불순물이 여전히 30∼50% 섞여 나와 재활용처리업체에 가져가도 안 받아줄게 뻔하다”며 “환경부 발표 이후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사람들이 아파트 관리소장들한테 전화해 문의하고, 소장들은 우리 같은 업자에 묻고 있지만 제대로 교통정리가 안 되고 있다”고 말했다.
배재근 과기대 환경공학과 교수는 “재활용업계 경기가 좋지 않은데 선뜻 나서서 폐비닐 같은 돈이 안 되는 재활용품을 수거하겠다는 이들을 찾기는 힘들 것”이라며 “국내에 수백개 수거운반 업체가 있는데 정부가 보조금 등을 지원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미화 자원순환사회연대 사무총장은 “EPR(생산자 책임 재활용제도) 분담금을 늘릴 필요가 있다”며 “폐기물을 만들어낸 기업들이 자체 생산량에 비례하는 분담금을 내고 그 돈으로 폐기물 회수·선별 업체나 재활용 원료 제조 업체를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사야 이택현 강경루 기자 Isaiah@kmib.co.kr
그래픽=이은지 기자
‘정상화’ 발표에도 폐비닐 수거 거부… 한쪽에 수북이 쌓여
입력 2018-04-04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