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종규, 1000주 안팎 쪼개 매입… 시가 9억원 규모 ‘제왕’ 별명
손태승, 마이너스통장 활용… 조용병, 7.5% 수익률 얻기도
김도진, 사고 싶어도 못사
은행권 최고경영자(CEO)들이 자사주를 사들이고 있다. 월급은 물론 마이너스통장도 동원한다. 자사주 매입은 책임지고 경영을 잘해 주가를 끌어올리겠다는 의지를 시장에 알리는 행위다. 실적 발표가 끝나 내부 정보 이용 오해를 피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요즘 더 매입에 적극적이다. 최근 은행주가 주춤한 것도 CEO들의 자사주 매입 열기를 촉발하고 있다.
3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를 보면 ‘자사주 매입의 제왕’은 KB금융그룹 윤종규 회장이다. 윤 회장은 지난달 30일 KB금융 주식 1000주를 5만9900원씩에 매입했다고 공시했다. 2011년 KB금융 부사장 시절까지 합쳐서는 18번째, 2014년 회장 취임 이후에도 벌써 9번째다. 방식은 늘 비슷하다. 1000주 안팎으로 쪼개 꾸준히 수천만원어치씩 사 모은다. 이로써 윤 회장이 보유한 KB금융 주식은 총 1만6000주, 시가로는 9억원가량 된다.
사기업에선 자사주를 대량 매입하면 인수·합병(M&A) 및 경영권 방어용으로 오해하기도 한다. 하지만 금융회사는 다르다. 일단 상장 주식 수가 억대여서 CEO가 자사주를 매입한다고 해도 지분 변동에는 거의 영향을 주지 못한다. 3일 기준 KB금융의 상장 주식 수는 4억1811만1537주로 윤 회장이 보유한 1만6000주의 지분율은 0.0038%에 그친다. 경영권보다는 경영의지 차원에서 자사주를 매입하는 것이다.
손태승 우리은행장은 지난달 두 차례에 걸쳐 1억5000만원어치 자사주를 사들이기 위해 잠깐 마이너스통장을 이용했다고 국민일보에 밝혔다. 손 행장은 “2일 2000만원 입금으로 일단 매입 대금을 메웠다”며 “기회가 될 때마다 우리은행 주식을 매입하고 싶다”고 말했다. 손 행장뿐만 아니고 과점주주 형태로 경영권을 나눠 가진 신상훈 노성태 박상용 사외이사들도 자사주 매입에 동참했다. 손 행장은 “금호타이어가 법정관리에 들어갈 것에 대비해 충당금을 3000억원 쌓았는데, 해외 매각이 성사돼 이 돈이 환입될 가능성이 크다”면서 2분기 실적 개선을 자신했다.
신한금융그룹 조용병 회장도 지난달 말 신한금융 2171주를 매수해 총 1만2000주를 보유했다고 공시했다. 총 5억4060만원어치로 2015년 3월 첫 자사주 매입 이래 7.5%의 수익률을 얻었다. 주당 평균 매입 단가는 4만1894원이었는데 이날 신한은행 주가는 4만3950원을 기록했다. 위성호 신한은행장 역시 1만3419주를 보유하고 있다.
자사주를 많이 사고 싶으나 그럴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주인공은 김도진 IBK기업은행장이다. 김 행장은 주요 은행장 가운데 유일한 재산공개 대상이다. 기업은행이 기획재정부 산하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 적용을 받는 국책은행이기 때문이다. 10억원 규모의 비교적 소박한 김 행장의 재산목록 가운데 기업은행 1625주 보유가 눈에 띈다. 총 2673만1000원어치로 다른 은행장들에 비해 매우 소박하다. 김 행장은 주식을 3000만원 이상 보유하면 공직자들처럼 백지신탁할 의무가 있다. 자사주를 많이 사서 경영의지를 만방에 알리고 싶지만 그럴 실익이 없는 셈이다.
금융연구원 임형석 은행보험연구실장은 금융권 CEO의 자사주 매입에 대해 “경영진이 주주와 이해관계를 일치시키는 차원에서 책임경영을 구현하는 긍정적 현상”이라고 평가했다.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
마이너스통장까지 동원… 은행 CEO, 자사주 매입 바람
입력 2018-04-04 0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