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말 시작된 ‘바이오 붐’ 올해 초 절정 “바이오주 투기성 자본 많다” 거품 우려
금감원, R&D 비용 회계처리 방식 지적… 당기순이익이 줄줄이 순손실로 바뀌어
전문가 “정부, 제약산업 육성… 전망 밝아 위험 요소 고려해 투자 결정하는게 좋다”
올해 1분기 주식시장에서 가장 뜨거웠던 주식은 단연 제약·바이오 종목이었다. 올해 초 급상승 흐름을 타면서 코스닥시장을 이끌었던 제약·바이오 종목들은 최근 한 달 사이 줄줄이 내리막길을 걸으며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 끊임없는 ‘거품 논란’ 속에 투자자들의 고민은 깊어져간다. 지금의 잡음이 다시 상승랠리를 펼치기 전의 ‘숨 고르기’인지, 장기적 약세장의 서막인지 혼란스럽기만 하다. 전문가들은 제약·바이오 종목의 장기 전망은 긍정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다만 주식 상장 방식, 재무제표 등을 잘 따져 ‘옥석 가리기’를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왜 주가 빠지고 있나
제약·바이오 종목으로 분류되는 차바이오텍은 4일 코스닥시장에서 7.48% 내린 1만8550원에 마감했다. 지난달 23일 하한가를 찍은 뒤 하락세를 보인 차바이오텍은 올해 초 주가(1월 26일 장중 최고가 4만2800원)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네이처셀, 신라젠 등 코스닥시장을 견인하던 제약·바이오주들도 최근 두 자릿수의 급락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 시작된 ‘바이오 붐’은 올해 초에 절정이었다. 차바이오텍은 지난 1월 바이오주 상승기류를 타고 한 달 만에 52%나 올랐었다. 금융정보 제공업체 와이즈에프엔에 따르면 1분기 코스닥시장에서 제약·바이오 종목의 거래대금은 4조98억원에 이르렀다. 지난해 1분기(5888억원)보다 6.8배나 뛴 규모다. 그동안 제약·바이오 종목의 몸집은 불었다. 지난달 30일 기준으로 시가총액 1조원을 웃도는 제약·바이오 종목은 23개로 1년 새 77%나 늘었다. 다만 전문가들은 바이오 붐이 불던 지난 1월에도 “매출액 1조8000억원인 일본 제약회사 다케다의 시가총액이 47조원인데 매출액 8000억원인 셀트리온의 시가총액이 45조원이다. 그만큼 투기성 자본이 많이 들어왔다는 것”이라며 거품을 우려했다.
제약·바이오 종목의 주가는 지난 1월 말 금융감독원이 제약·바이오기업의 연구개발(R&D) 비용 회계 처리방식을 문제 삼으면서 빠지기 시작했다. 기업은 R&D 비용을 회계 장부에 ‘무형자산’ 또는 ‘비용’으로 표기할 수 있다. 무형자산으로 처리하면 R&D 비용은 자산이 되고 회사의 영업이익은 늘어난다. 금감원은 국내 제약·바이오기업의 상당수가 R&D 비용을 무형자산으로 처리한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금감원은 상장사들의 지난해 결산 결과가 공시되면 임의적인 R&D 회계처리와 관련해 테마감리를 하겠다고 경고했다.
이렇게 되자 제약·바이오기업들은 줄줄이 잠정 실적을 변경하고 나섰다. 코스닥시장의 제넥신은 지난달 14일 잠정 실적을 정정 공시했는데 영업손실이 64억원에서 269억원으로 커졌다. 메디포스트도 실적을 정정해 19억원이었던 당기순이익이 14억원의 당기순손실로 뒤바뀌었다.
차바이오텍의 경우 정정공시로 ‘4년 연속 영업손실’이 드러났다. 거래소는 차바이오텍을 코스닥 관리종목으로 지정했다. 거래소는 최소한의 유동성을 갖추지 못했거나 영업실적 악화 등으로 부실이 심화돼 상장폐지 기준에 해당할 우려가 있는 종목에 관리종목 딱지를 붙인다. 실적을 줄인 기업 대부분은 주가가 하락했다.
여전한 거품 논란
제약·바이오 종목에는 언제든지 악재로 바뀔 수 있는 여러 위험요인도 있다. 애널리스트 분석리포트가 적다는 게 대표적이다. 투자자들은 ‘깜깜이 투자’에 노출돼 있다. 유안타증권에 따르면 시가총액 1조원 이상 종목 중 최근 3개월 동안 1건의 투자의견도 제시되지 않은 종목은 26개다. 이 가운데 제약·바이오 종목이 15개나 된다. 최근 3개월간 제약·바이오 종목 중에 ‘투자의견이 제시되지 않거나 1건뿐인 종목’ 비중은 60%에 이른다. 다른 업종들(10% 중반)보다 훨씬 크다. 게다가 이 격차는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김광현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신약개발의 성공 가능성과 실적 영향을 가늠하기 어려운 제약·바이오 주가를 어떻게 판단하는지는 온전히 투자자 몫으로 남겨져 있다”고 지적했다.
‘거품 논란’ 역시 여전하다. 고경범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지난달 제약·바이오 종목이 조정을 받는 와중에도 제약·바이오 종목에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 자금이 대량 유입됐다”며 “레버리지 ETF는 대부분 단타 매매를 기반으로 한 투기자금 성향이 높다”고 분석했다. 고 연구원은 “저가 매수를 노린 것 같은데 제약·바이오 주식의 낙폭이 과대하다는 확신이나 근거가 없이 투자하는 건 위험하다”고 덧붙였다.
해외와 비교해도 국내 제약·바이오 주식은 실제 매출보다 주가가 높다. ‘MSCI(미국의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에서 작성해 발표하는 세계 주가지수) 한국 헬스케어지수’의 주가수익비율(PER)은 지난해 10월까지 37.5∼47.1배에 머물렀지만 지난달 초 81.6배까지 치솟았다. 반면 ‘MSCI 미국 헬스케어지수’의 PER는 16.2배 수준이다. PER는 회사의 주식가격을 주당순이익으로 나눈 값이다. 수치가 높을수록 해당 회사의 주가가 수익 대비 고평가됐음을 의미한다.
전망 밝지만 ‘위험’ 고려해야
대다수 전문가들은 정부가 제약산업 육성에 4324억원을 투입하는 점 등을 감안하면 제약·바이오 업종의 전망은 밝다고 내다본다. 박시형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제약·바이오 기업의 R&D 비용 자산화 관련 이슈에 따른 주가 하락은 일시적일 뿐,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실적 투명성을 높이고 불확실성을 해소해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위험 요소들은 고려해야 한다. 김미현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한미약품, 유한양행 등 주요 제약 기업은 이미 R&D 비용을 비용으로 처리하고 있기 때문에 주가 하락 위험이 적다. 그러나 셀트리온, 삼성바이오에피스, 신라젠 등 주요 바이오 기업중에 R&D 비용을 자산으로 회계 처리하는 곳이 일부 있어 재무제표를 확인한 뒤 투자 여부를 결정하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기업의 상장 방식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기술특례’로 상장됐을 경우 R&D 비용을 비용으로 회계 처리해 실적이 나빠지더라도 거래소의 관리종목 지정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선민정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코스닥 일반 상장 기업의 경우 최근 4사업연도 영업손실이 발생하면 관리종목으로 지정되지만 기술특례 상장기업의 경우 장기 영업손실 여부를 따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안규영 기자 kyu@kmib.co.kr
그래픽=이은지 기자
[And 경제인사이드] 거품 빠진 ‘바이오 열풍’… 다시 상승? 약세장 서막?
입력 2018-04-05 05:02 수정 2018-04-05 19: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