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랑 비슷한데 인기… ‘술탄’ 에르도안 비결은 ‘스피치’

입력 2018-04-04 05:00
사진=AP뉴시스

쉽고 직설적인 어법 사용, 종교적 메시지 강조하고 서구 비난하며 보수층 설득
매번 TV 생중계… 피로감도

“트럼프에게 트위터가 있다면 에르도안에겐 스피치가 있다.”

유럽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못지않게 ‘강한 남자’로 자리매김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의 인기 비결은 뭘까. 에르도안 대통령이 지지율 40%를 넘기면서 내년 대선에서 무난히 연임에 성공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뉴욕타임스(NYT)는 “경건함과 맹렬함을 넘나드는 그의 화술이 터키 국민들의 혼을 쏙 빼놨다”고 2일(현지시간) 분석했다.

연설의 레퍼토리는 단순하다. 미국과 유럽 등의 그의 지지자들이 미워하는 사람들을 헐뜯는 것이다. 일관성 있는 주제와 달리 화법은 변화무쌍하다. 우선 전투적이고 과격한 표현을 사용해 대중의 공감을 유도한다. 민주주의 옹호론자들을 ‘약탈자’라고 칭하면서 그들의 자유로운 생활방식에 대해 “저들은 (술을) 토할 때까지 마셔댄다”고 비꼰다. 시리아 쿠르드를 두고 미국과 맞서는 상황에서는 “이봐 미국, 내가 몇 번이나 말했나. 당신들은 우리 편인가, 아니면 테러집단 편인가”라고 따졌다.

때로는 한 나라의 지도자가 아니라 싸움꾼 같은 발언도 한다. 자신을 비판한 터키계 독일인 작가 도간 아칸리를 체포한 일로 독일 정부와 신경전 중일 때는 독일 외무장관을 향해 “터키 대통령한테 감히 말을 한다고? 우리를 가르치려 들다니 분수를 모른다. 당신 몇 살이야”라고 소리쳤다.

종교적인 내용으로 연설을 풀어나가거나 시를 인용해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한다. 지난달 터키가 시리아 북부 아프린을 장악했을 때는 “의심의 여지없이 승리는 신으로부터 온 것”이라며 시 한 편을 낭송한 뒤 기도의 시간을 요청했다. “용맹한 사람들은 아멘이라고 말할지니, 신은 위대하도다.”

이런 전략은 지지자들에게 영감을 주는 동시에 정적들을 분열시켰다. 연설가로서 청중을 휘어잡는 능력은 정적들의 시기를 살 정도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는 의견이 많다. NYT는 “연설을 통해 보여준 그의 카리스마가 터키 내 보수 노동계층의 코드와 맞아떨어졌다는 데에는 그를 지지하는 세력이나 비방하는 세력 모두 동의하고 있다. 더불어 시민들이 독재자 스타일의 소위 ‘스트롱맨’을 갈망하는 국제적인 트렌드와도 맞물렸다”고 분석했다. 유럽의회(EC) 국제관계 담당 선임연구원인 아슬리 아이딘타스바스는 “정치인들이 잘 정리된 원고를 읽고 표현을 정제하는 시대에 분노나 미움 등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은 신선하게 받아들여진다”고 말했다.

그러나 ‘너무 많은 스피치’에 피로감을 느끼는 여론도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의 연설은 자국 내 여러 TV 채널에서 매번 생중계된다. 그의 목소리가 집에서도, 카페에서도, 관공서에서도 흘러나온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주중에 많게는 세 차례, 주말에는 하루에 두 차례 연설할 때도 있다. 야당 정치인 메랄 악세너는 에르도안 대통령의 화법을 흉내내며 최근 자신의 트위터에 이렇게 남겼다.

“친구여, 잠시만 입을 닫게. 모든 일에 대해 얘기할 필요는 없네. 손가락으로 모든 것을 가리킬 필요는 없네. 잠시 집에 앉아서 한숨 돌리게. 우리도 좀 한숨 돌리게. 터키도 한숨 돌릴 수 있게.”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