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판 노예 이대론 안된다] 장애인 추적관리 절실… ‘노예’ 가해자 처벌 강화해야

입력 2018-04-04 05:00

한 명 한 명 어디서 일하는지 노동실태 어떤지 감독해야
미등록장애인 대책도 요망… 장애인 일자리 마련도 중요 정당한 권리 보장 지원 시급

최근 잇따르고 있는 ‘현대판 노예’ 사건은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지 않는 낮은 인권 의식과 정부 복지시스템의 허점을 드러냈다. 정부는 장애인 문제가 터질 때마다 반인륜적 학대행위를 근절하겠다고 했지만 제대로 된 장애인 실태조사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없을까. 국민일보는 장애인단체와 사회복지 전문가들에게 의견을 구했다. 이들은 한목소리로 허울뿐인 장애인 국가등록제를 강화해 체계적인 보호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대판 노예 사건의 가해자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이용석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홍보정책실장은 3일 “국가에서 장애인등록제를 운영하고 있지만 관리는 제대로 안 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현대판 노예 사건이 발생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장애인등록제는 정부가 모든 장애인을 등록 받아 이를 기초로 장애인 복지정책을 수립하고 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시스템이다.

지난달 이낙연 총리가 장애인등급제를 폐지하고 개인별 맞춤 지원을 제공한다는 장애인정책 종합계획을 발표했지만 현대판 노예 피해자 같은 극단적 인권침해 사건에는 대안이 되지 못한다. 등록제만으로는 장애인의 소재와 활동을 정부가 직접 추적하거나 관리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장애등급 재판정을 받지 않거나 활동 지원과 관련한 조치를 받지 않는 경우 연락을 시도하다가 (현대판 노예와 같은) 사례를 발굴하는 경우는 있다”면서도 “현실적으로 숨어 있다든지 누군가 사회 바깥과의 연결을 통제한다면 등록제만으로는 적발에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나운환 대구대 직업재활학과 교수는 “장애인 한 명이 어디에서 누구와 일하는지, 그리고 노동실태는 어떤지 등 관리·감독하는 체계를 만드는 게 현대판 노예 사건을 막는 방법이 될 것”이라며 “장애인 사례 관리 시스템 개발에 대한 논의가 시작돼야 한다”고 말했다.

장애가 의심되지만 장애판정을 받지 못한 이들을 위한 대책도 시급하다. 일반적으로 인구의 10%가 장애인으로 추정되지만 2016년 기준 한국의 등록 장애인은 전체 인구의 4.9%인 250만명에 불과하다. 전지혜 인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등록된 장애인은 그나마 행정력을 동원해서라도 추적이 가능하지만 미등록 장애인들은 어디에 얼마가 있는지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지 전혀 파악이 안 된다”며 “미등록장애인을 우선 등록케 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했다.

장애인들이 제대로 된 직업을 가질 수 있도록 이끄는 정책도 필요하다. 정현석 한국장애인복지시설협회 정책실장은 “장애인에게 허용된 직업과 일자리가 한정적인 것도 문제”라며 일자리 확대 정책이 장애인에게도 적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프랑스는 전담인력을 투입, 개인별 맞춤계획서 작성 등 장애인 취업 지원을 위한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한다. 나사렛대 재활복지대학원장 김종인 교수는 “해외에는 장애인의 삶을 디자인해주는 회사들이 있다”며 “정부가 민간 차원에서 장애인의 삶을 디자인하는 회사를 육성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했다.

학대 가해자들의 처벌을 강화하기 위해선 사법기관의 장애인 지원이 확대돼야 한다. 박경수 한양사이버대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장애인은 자기가 당한 피해를 정확히 서술하기 어렵기 때문에 검찰이나 법원에서 전문적인 진술 조력인을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애인 학대는 처벌을 받아야 할 범죄라는 인식도 확산시켜야 한다. 은종군 중앙장애인권익옹호기관 관장은 “(현대판 노예 사건은)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지만 시간이 꽤 지난 뒤 유사한 사건사고를 언론을 통해 접하고 난 후에 ‘학대였구나’하고 신고하시는 분들이 꽤 있다”고 했다. 강동욱 한국복지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주위에 그런 이웃이 있으면 공익제보를 해달라는 식으로 적극적인 행정과 홍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허경구 황윤태 기자 ni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