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가 뒷談] 검찰처럼… 공정위 포렌식 조사 강화

입력 2018-04-04 05:05

공정거래위원회에서 가장 규모가 큰 과(課)는 담합이나 총수일가 사익편취를 조사하는 곳이 아니다. 만들어진 지 6개월밖에 안된 디지털조사분석과가 규모 면에서 1위다. 대기업들도 이곳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숙련된 ‘포렌식(디지털 증거 수집) 기법’으로 공정위 조사가 더욱 촘촘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2010년 만들어진 공정위 ‘포렌식 팀’은 지난해까지 인원이 4명에 불과했다. 이 팀은 불공정행위 현장조사에서 포렌식 업무를 담당했다. 검찰로 치면 압수수색한 컴퓨터에서 범죄 혐의를 찾는 것이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디지털 조사기법의 선진화와 증거 수집 능력 강화를 위해 지난해 9월 이 과를 신설했다. 정원은 22명으로 기존 포렌식 팀보다 5배 이상 늘었다. 여기에는 민간 전문직도 포함됐다.

공정위는 ‘디지털 증거의 수집·분석 및 관리 등에 관한 규칙’과 이에 따른 예규를 제정해 시행한다고 3일 밝혔다. 지금까지 관련 고시가 있었지만 증거 수집과 활용, 기업 동의 등 세부 절차가 두루뭉술했다. 본격적인 실력 행사에 앞서 제도를 정교하게 정비한 셈이다.

공정위는 기업의 방어권을 강화했다. 증거 수집·선별 과정에서 피조사업체가 참관할 수 있도록 했고 수집한 파일의 복사본 교부를 요청할 수 있는 권리도 부여했다. 내부 보안도 강화해 디지털조사분석관만 포렌식 업무를 전담하도록 했다.

대기업 관계자는 “과거처럼 단순 컴퓨터 파일 삭제 등으로 공정위 조사를 피하기 어려울 것 같다”면서 “공정위가 이번에 장비와 인력을 대거 보강하면서 검찰의 포렌식 조사 수준에 근접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세종=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

삽화=이은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