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조작국’ 지정 우려… 시장 개입 최대한 자제
“급격한 쏠림현상 발생 땐 액션 취한다는 것이 원칙”
“정부 외환시장개입 공개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문제”
미국의 환율압박으로 원·달러 환율이 급락(원화가치 급등)하면서 국가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그러나 정작 정부 대응은 소극적이다. 상황을 관망하고 있을 뿐이다. 미국의 환율보고서 발표를 앞두고 외환시장에 개입하기 부담스럽다보니 원론적인 입장만 되풀이하는 형국이다. 정부가 시장에 명확한 신호를 보내지 않으면 외환시장 불확실성만 키울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3일 원·달러 환율은 1054.20원으로 마감했다. 3년5개월 만에 최저이던 전날 종가(1056.6원)보다 2.4원 더 내린 것이다. 종가 기준으로는 2014년 10월 29일(1047.3원) 이후 최저다.
최근의 환율 급락세, 즉 원화가치의 급격한 상승은 국내 수출기업에는 가격경쟁력 약화를 불러올 수밖에 없다. 특히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경제는 직격타를 맞게 된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촉발한 ‘플라자합의’(무역 수지 개선을 위해 미 달러화 강세를 완화하고 엔화 절상 등을 용인)가 한국에서 재연될 수 있다는 지적마저 나온다.
하지만 정부는 시장개입을 최대한 자제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외환시장 상황은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있다”며 “급격한 쏠림현장이 발생하면 정부가 액션을 취한다는 기본 원칙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고 말했다. 정부가 원론적 입장을 되풀이하는 이유는 현재 시장반응이 비정상적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미국의 환율압박은 늘 있어왔던 것이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과의 연계설에 대해서도 확실히 선을 그은 바 있다”며 “결국 시장이 과잉반응을 보이는 것이고, 당분간 추이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환율하락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는 외환시장개입 공개 역시 정해진 수순이라는 입장이다. 미국과 국제통화기금(IMF) 등은 끊임없이 한국정부의 외환시장개입을 공개하라고 독촉해 왔다. 기재부 관계자는 “정부는 외환시장개입 공개를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문제라고 보고 있다”며 “하지만 결정 시점이나 공개 수준은 철저히 독자적으로 결정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상황에 개입하기 어려운 사정도 있다. 미국은 이달 중순에 환율보고서를 발표할 예정이다. 정부가 이에 앞서 외환시장에 개입할 경우 한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할 수 있다는 미국의 압박이 힘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정부가 지나치게 미국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숙명여대 신세돈 경제학과 교수는 “지난해 10월부터 추세적으로 환율이 하락하고 있고 이미 1분기 수출성적에서부터 그 영향이 나타나고 있다”며 “외환시장의 불확실성을 제거하기 위해 정부가 더욱 적극적으로 시장에 개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
그래픽=안지나 기자
환율 계속 떨어지는데… 정부는 원론적 입장만 되풀이
입력 2018-04-04 0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