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정상 합의문 ‘국회 비준’ 신중론 만만찮네∼

입력 2018-04-04 05:00

헌법상 북한을 국가로 인정 안해 비준 동의 대상인지 법적 논란 부결 땐 정치적 부담… 효력에 한계
과거 무용지물이 된 사례 등 감안 비준 동의 필요성 공감대 확산… 文 대통령은 국회 통과에 자신감

4·27 2018 남북 정상회담 합의문은 국회 비준 동의를 받을 수 있을까. 문재인정부는 합의문의 국회 비준 동의 절차를 밟겠다는 입장이지만, 이 문제는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법적 논란은 물론 통과되지 못할 경우 정치적 부담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21일 청와대에서 열린 남북 정상회담 준비위원회 2차 전체회의에서 “이번 남북 정상회담 합의문에는 지난 두 차례 남북회담에서 합의한 기본 사항을 다 담아 국회 비준 동의를 받도록 준비하라”고 지시했다. 합의문이 국회 비준을 거쳐 법적 효력을 갖게 되면 정권교체와는 상관없이 남북 합의가 계속 지켜질 수 있다는 게 문 대통령의 생각이다. 앞선 두 차례의 남북 정상 간 합의는 비준 절차를 거치지 않았고, 보수 정부에서 사실상 폐기됐다.

합의문 국회 비준 동의 절차의 근거는 2014년 제정된 남북관계발전법이다. 남북관계발전법 21조 3항에는 ‘국회는 남북 합의서의 체결·비준에 대한 동의권을 가진다’고 명시돼 있다. 그러나 일부 헌법학자들은 합의문의 국회 비준 동의 절차가 헌법에 부합하는지를 놓고 논란이 벌어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헌법상 국회는 조약(국가 간 서면 형식의 합의) 등에 대한 비준동의권을 갖지만 현행 헌법은 북한을 독립된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다. 남북 정상회담 합의문 역시 국가 간 조약으로 볼 수 없기 때문에 비준 동의 절차 역시 할 수 없다는 의미다. 심경수 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3일 “북한의 지위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국회 비준 동의 과정에서 논란이 발생할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국제법 학자는 “북한이 유엔 회원국인 만큼 국제법적으로 국가 지위가 인정되지만 국내법에서는 헌법과 대법원 판결을 통해 국가로 인정되지 않는다”며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에도 ‘남북은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라고 돼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비준 동의 절차를 거치려면 북한과의 관계를 재설정해야 하는 부담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국회 비준 동의 절차의 정치적 위험성도 지적하고 있다. 박찬운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비준 절차를 거치겠다는 것은 정상 간 합의만으로 효력이 있는 게 아니라 국회 비준 동의를 거쳐야만 법적 효력이 있다고 인정하는 것”이라며 “만약 국회에서 비준동의안이 통과되지 못하면 역사적 합의를 해놓고도 법적으로는 인정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국회 비준동의안은 국회 재적의원 과반 출석, 과반 찬성으로 처리된다. 20대 국회 원 구성으로 볼 때 논란이 생길 경우 국회에서 동의안이 통과되지 않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박 교수는 “청와대가 국회 비준 동의를 추진하는 취지는 이해하지만 여러 현실적인 문제들이 있다”며 “신중히 생각해야 한다. 더 정확히는 비준 절차를 거치지 않는 게 낫다”고 말했다. 국제법에 밝은 전 정부 고위 관계자도 “남북은 국가 간 관계가 아니라 특수한 관계”라며 “따라서 조약에 적용되는 비준 절차를 그대로 적용하기엔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반론도 만만치 않다. 과거 남북 정상회담에 참여한 인사들은 여러 부담을 감안해도 남북 정상회담 의미가 지속되기 위해선 비준 동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2007년 당시 통일부 장관으로 남북 정상회담에 참여했던 이재정 경기교육감은 “정권이 바뀌면 남북 합의문은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 어떤 형태로든 국회 동의를 받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참여정부 당시 청와대 대변인이던 천호선 전 정의당 대표는 “문 대통령이 비준 동의를 받겠다고 한 건 국회를 통과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깔려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윤성민 신재희 기자 woody@kmib.co.kr

그래픽=전진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