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보안사 수사관 재판 중 구속… 1980년대 재일동포 간첩사건 위증 혐의

입력 2018-04-02 23:29
1980년대 재일동포 간첩조작 사건 재심에서 위증을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옛 국군보안사령부(현 국군기무사령부) 전직 수사관이 2일 재판을 받다 구속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9단독 이성은 판사는 전직 보안사 수사관 고병천(79)씨에 대해 직권으로 영장을 발부하고 그 자리에서 집행했다. 피해자 윤정헌(65)씨 변호인이 과거 고씨가 했던 고문에 대해 질문을 이어가자 “고문한 이유를 말할 수 없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등 무성의한 답변을 하자 내린 결정이다.

이 판사는 답변을 피하는 고씨를 향해 “과거를 기억하기가 매우 고통스럽겠지만 피고인은 기억을 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기억해내는 일이 피고인에게 너무 힘든 과정이라 귀가를 시키면 도주나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다고 보인다”며 구속영장을 집행했다.

이날 재판은 고씨에 대한 피고인 신문, 최후진술, 검찰 선고 의견 순서로 진행될 예정이었다. 법정에도 윤씨를 비롯한 여러 피해자들이 방청석을 지켰다. 고씨는 피고인 신문 초반 검찰이 “재심 재판에서 위증한 사실을 인정하느냐”고 묻자 “모든 게 제 잘못이다. 동료들, 선배들 생각에 위증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고문을 지시한 윗선, 고문을 한 이유 등에 대해 변호인이 질문하자 답변을 피해갔다.

이 판사는 “피해자들이 몇 만 배 더 힘든 시간을 보냈으리라 생각한다”며 “피해자들이 아픈 과거를 떠나보내게 도와줄 열쇠는 피고인이 쥐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는 말을 남기며 고씨를 구속했다.

윤씨는 고려대 의대에 재학 중이던 84년 8월 보안사 수사관에게 끌려가 고문을 당한 뒤 간첩으로 몰려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3년을 복역하고 88년 가석방으로 풀려났다. 윤씨를 고문했던 고씨는 2010년 12월 열린 윤씨의 재심에 증인으로 나와 “고문한 적이 없다”고 위증한 혐의로 지난해 12월 재판에 넘겨졌다.

이가현 기자 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