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활용 분리배출 현행대로, 급한 불은 껐지만…

입력 2018-04-03 05:02
경기도 광명의 한 재활용 처리장에서 마스크를 낀 직원들이 컨베이어벨트 앞에서 비닐과 플라스틱 등 재활용품을 분류하고 있다. 광명=최현규 기자

업체 폐기물 소각 부담 줄여… EPR 지원금 조기 지급도
서울시도 자체 대책 내놔… 미수거시 자치구가 해결
전문가들 “근본 대책은 안돼… 비닐·플라스틱 사용 줄여야”


폐비닐 등 재활용 쓰레기 수거를 거부했던 수도권 48개 재활용업체들이 하루 만에 다시 수거에 나섰다. 정부 혼선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자 환경부가 부랴부랴 설득에 나선 결과다. 하지만 현장의 하청 수거업체들에는 이 같은 방침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혼선은 여전했다.

환경부는 폐비닐·페트병·폐스티로폼 수거를 거부한 재활용업체들과 협의해 이전처럼 재활용 쓰레기를 정상 수거하기로 했다고 2일 밝혔다. 환경부 관계자는 “재활용품 가격하락을 고려한 정부대책을 설명하고 아파트와 재계약을 독려하면서 재활용업체들을 설득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장 상황은 달랐다. 한 재활용업체 관계자는 “환경부가 ‘대란은 막아야 되는 것 아니냐’며 여러 차례 연락을 해 일단 동의는 했다. 하지만 대책을 정확히 듣진 못했다”며 “현장에서 작업 중인 수거업체들이 우왕좌왕하고 있는 건 사실”이라고 했다.

예고된 대란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던 정부가 뒤늦게 대책마련에 나서면서 졸속으로 급한 불끄기에만 나섰다는 지적이 많다. 환경부 관계자는 “지난 주말 48개 업체에 수거 동의 관련 전화를 했고 이 중 40개 업체가 동의했다”며 “동의하지 않던 나머지 8개 업체도 이날 오전에 동의했다”고 해명했다.

환경부는 이달 안에 폐기물관리법 시행규칙을 개정해 재활용업체의 비용 부담을 덜어주기로 했다. 그동안 업체들은 재활용이 불가능한 비닐 등을 사업장 폐기물로 소각하면서 1t당 20만∼25만원을 부담했다. 이번 개정으로 사업장 폐기물이 아닌 생활폐기물로 처리하면 1t당 약 4만∼5만원으로 부담이 줄어들 전망이다.

폐지·폐플라스틱 등 수입물량이 증가하고 있는 품목은 재생원료 사용업계와 국산 물량 사용 촉진방안을 협의키로 했다. 폐비닐 등 주요품목에 대한 생산자책임 재활용제도(EPR) 지원금을 조기 지급하는 방안도 검토한다. EPR은 음료수 등을 일회용기에 담아 파는 제조업체에게 재활용 분담금을 내게 하는 제도다. 이번 대란이 중국의 폐기물 수입 금지 조치에서 비롯된 만큼 재활용품 동향을 상시 모니터링하고 해외판로 개척도 지원할 계획이다.

서울시도 자체 대책을 내놨다. 비닐류의 경우 재활용 가능 자원이기 때문에 종량제 봉투로 배출하면 위법이라는 게 서울시의 입장이다. 시는 아파트 등 공동주택 관리사무소들이 내건 ‘폐비닐을 종량제봉투에 넣어서 배출하라’는 안내문을 수정토록 요청할 예정이다.

공동주택의 재활용품은 공동주택에서 자체 처리한다는 기조는 현행대로 유지할 계획이다. 재활용품을 구청이 수거해 달라고 요청하는 공동주택에 대해선 구청이 민간업체와 위탁계약을 해 처리하는 방안을 강구하기로 했다. 수거되지 않은 폐비닐이 있으면 구청이 대행업체를 통해 수거토록 할 방침이다.

서울시 자원순환과 관계자는 “재활용품 가격이 계속 낮아지면 구청 등 공공기관이 모든 쓰레기를 수거해야 하는 날이 올 수도 있다”면서 “폐비닐 문제는 구청을 통해 해결하고 장기 대책은 별도로 마련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근본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비닐과 플라스틱 사용량 자체를 줄이지 않으면 이번과 같은 사태는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 권태선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는 “프랑스의 경우 소비자가 병을 직접 가게로 가져가 우유와 같은 식품들을 병에 담아온다”며 “빈게을 수거하는 게 아닌 자기가 쓰던 병을 재사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신수연 녹색연합 녹색사회팀장은 “환경부 대책은 단기 대응책”이라며 “자원순환 측면에서 봤을 때 재활용도 의미가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비닐 등의) 사용 자체를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손재호 김남중 기자 sayho@kmib.co.kr

사진=최현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