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김영철 입에서 나온 ‘천안함’… 농담처럼 첫 언급

입력 2018-04-02 18:37 수정 2018-04-02 21:33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이 2일 평양 고려호텔에서 열린 긴급 간담회에서 전날 평양공연 취재 제한에 대해 우리 측 방북 취재단에게 사과했다. 사진은 김 부위원장이 지난 2월 27일 남측 방문 후 귀환하기 위해 경기도 파주 남북출입사무소로 들어서는 모습. 국민일보DB

폭침 인정 아닌 친근감 표현인 듯… 그래도 상당한 돌출 발언 해석
南기자 취재 불허도 이례적 사과 “국무위원장 경호 때문에 생긴 일”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이 우리 측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천안함’을 직접 입에 올렸다. 김 부위원장은 2일 우리 측 예술단 숙소인 평양 고려호텔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남측에서 천안함 폭침 주범이라고 하는 사람이 저 김영철”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농담성 발언이었지만 2010년 당시 북한 인민군 정찰총국장을 맡고 있어 천안함 폭침 주범으로 지목돼 왔던 당사자가 스스로를 ‘폭침 주범’이라고 소개한 돌출성 발언이었다.

김 부위원장의 발언은 앞뒤 맥락상 천안함 폭침 책임을 인정했다기보다는 우리 측 기자들에게 친근감을 표시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2월 평창 동계올림픽 폐회식 참석차 방남했을 때 불거졌던 논란을 의식했을 수도 있다. 김 부위원장은 2016년 재미교포 사업가인 박상권 평화자동차 회장을 만나 “나는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고 말하는 등 천안함 폭침 책임을 부인해 왔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김 부위원장이 천안함 관련 입장을 준비해 일부러 언급한 것 같지는 않다”면서 “남측에서 자기 이미지가 천안함 문제와 결부돼 온 부분이 있어 위트 있게 하려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 부위원장은 간담회에서 1일 평양 동평양대극장에서 열린 우리 측 예술단 공연 당시 북측 안내원들이 남측 취재진의 공연장 진입을 막은 데 대해 사과했다. 그는 “취재활동을 제약하고 자유로운 촬영을 하지 못하게 한 건 잘못된 일”이라며 “기자분들과 장관님(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앞에서 제가 북측 당국을 대표해 이런 일은 잘못됐다는 것을 사죄라고 할까, 양해를 구한다”고 말했다.

북한 고위 간부가 우리 측 인사에게 ‘사죄’ 언급을 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최고지도자인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직접 지시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북한 내에서도 2014년 최부일 인민보안상이 아파트 붕괴 사고 책임을 인정하며 주민들 앞에서 고개를 숙인 경우를 제외하면 고위 간부가 사과를 한 적이 없었다.

김 부위원장은 취재 제한이 김 위원장 경호 인력들과 공연 관계자들 간 조율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탓이었다고 해명했다. 김 부위원장은 “이해하실 문제가 있다. 어제 행사는 우리 국무위원장(김정은)을 모신 특별한 행사였다”면서 “국무위원장의 신변을 지켜드리는 분들과 공연을 조직하는 분들의 협동이 잘 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조선중앙통신 등 북한 매체들은 김 위원장이 공연 관람 당시 한 발언 중 일부를 이날 소개했다. 김 위원장은 “4월 초 정치 일정이 복잡해 시간을 내지 못할 것 같아 오늘 늦더라도 평양에 초청한 남측 예술단의 공연을 보기 위해 나왔다”면서 “우리 인민들이 남측의 대중예술에 대한 이해를 깊이 하고 진심으로 환호하는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벅차고 감동을 금할 수 없었다”고도 말했다.

김 위원장이 우리 출연진에게 농담을 던진 사실도 공개됐다. 김 위원장은 공연 후 한 출연자에게 “문재인 대통령에게 말을 잘해서 이번엔 ‘봄이 온다’고 했으니 이 여세를 몰아 가을에는 ‘가을이 왔다’는 (공연을) 하자”면서 “(나도) 김정은 위원장에게 전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은 위원장에게 전하겠다’는 발언 의미를 두고 추측이 분분하자 정부 관계자는 “북측 방식의 유머”라며 “공연하자는 말을 문 대통령에게 전하라고 하면서 본인도 북측 최고지도자에게 전하겠다는 뜻으로 한 것”이라고 했다.

조성은 기자, 평양공연공동취재단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