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증명서 떼러 왔다”며 진입… 인질 잡고 “기자 불러달라” 외쳐
경찰, 간질 증세 발작 틈 타 검거… 피해 학생 다행히 다치진 않아
학교보안관, 신원 확인도 안해… 평소에도 출입 관리 잘 안된 듯
서울 서초구의 한 초등학교에서 정신질환을 앓는 20대 남성 졸업생이 여학생의 목에 흉기를 대고 협박하는 인질극을 벌였으나 1시간 만에 제압됐다. 학교보안관은 신원 확인도 하지 않은 채 남성을 들여보냈다. 학부모들은 평소에도 출입 통제가 허술해 불안했다고 토로했다.
서울 방배경찰서는 초등학생을 붙잡아 흉기로 위협한 혐의(인질강요)로 A씨(25)를 검거했다고 2일 밝혔다. 학교와 경찰에 따르면 A씨는 오전 11시33분쯤 이 학교 교무실에 들어가 학급물품을 가지러 왔던 학생들 6명 중 4학년 B양(10)을 흉기로 위협하며 “억울한 일을 당했다. 기자를 불러 달라”고 외쳤다. 출동한 경찰에게는 “군에서 가혹행위를 당해 질병이 생겼고 4년간 국가보훈처에 보상을 요구했지만 거부당했다”고 토로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조사 결과 A씨는 뇌전증 장애 4급이었다. 그는 1시간 내내 대화를 거부하고 대치하다 경찰이 건넨 물을 마신 후에 간질 증세를 보였다. 이 틈을 타 경찰이 1시간 만인 오후 12시43분 A씨를 검거, 병원으로 이송했다. B양은 다치지 않았으나 다른 병원에서 심리검사를 받고 오후에 퇴원했다.
A씨는 학교 정문을 걸어 교내에 들어갔다. 그는 출입을 관리하는 학교보안관에게 “이 학교 졸업생인데 졸업증명서를 떼러 왔다”고 둘러댔다. 학교보안관은 신분증을 확인하거나 출입 기록을 작성하지 않고 들여보냈다. 학교 측은 “출입 대장에 다른 사람들의 사항은 다 적혀 있으나 A씨에 대한 내용만 없는 것을 확인했다”며 “보안관도 실수라고 인정했다”고 밝혔다.
2012년 서울 서초구 계성초등학교에서 묻지마 흉기 난동 사건이 벌어진 후 또 다시 학교 보안이 뚫린 셈이다. 계성초 사건 이후 교육부는 ‘학교 출입증 및 출입에 관한 표준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2014년부터 일반인이 초등학교를 방문할 때는 이름과 생년월일, 방문목적 등을 일일방문증 관리대장에 기재토록 했다. 신분증과 관리대장 기재 내용이 서로 다른 경우, 출입 목적이 불명확하거나 교내 보안을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 등에는 출입을 허가해서는 안 된다.
이 학교 학부모들은 평소에도 학교 출입 관리가 엄격한 편이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1학년 자녀를 둔 정모(41)씨는 “첫째 아이가 다니던 다른 학교에서는 얼굴을 아는 엄마들이 와도 일일이 확인하고 기록했다”며 “여기는 학부모들도 너무 쉽게 드나들어 불안했다. 오후 4∼5시쯤 남성들이 학교 안팎을 오가는 것도 자주 봤다”고 했다. 다른 학부모 최모(37)씨도 “학교보안관이 신분증 확인을 요구한 적은 없었다”고 했다.
학부모들은 학교의 사후 대응도 못미더워했다. 학부모들은 대부분 언론 보도를 보고 사건을 파악했다고 했다. 학교는 오후 1시쯤에야 e알리미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돌봄교실에서 우선 아이들을 보호하고 있으니 불안하신 학부모님들께서는 직접 오셔서 하교시켜달라”고 공지했다. 사건 당시 목격자 학생의 학부모 C씨는 “아이가 사건 당사자인데도 학교에서 공식 연락을 전혀 받지 못했다”며 “오후 1시 넘어 e알리미를 통해서 방과후 학교를 휴강한다는 내용만 전달받았고 이후 담임 선생님을 통해 얘기를 들었다”고 했다. 학교 측은 “사안을 정리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며 “오후 4시32분쯤 학부모에게 사건 경위와 심리치료 계획을 공지했다”고 밝혔다.
이재연 방극렬 김성훈 기자 jaylee@kmib.co.kr
사진=최현규 기자
또 뚫린 초등학교… 대낮 강남 한복판서 인질극
입력 2018-04-02 19:01 수정 2018-04-06 19: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