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 신용카드 쓰라고 준 세무사 100만원 과태료 부과에 그쳐
명백한 ‘뇌물’ 고발 조치 않고 편협한 행정 처분만 내려져
세무사 A씨는 2016년 초에 업무로 알게 된 세무공무원에게 자신의 신용카드를 건넸다. 이 세무공무원은 음식점 등에서 이 카드를 썼다. 둘 사이는 업무상 연관관계다. A씨가 ‘뇌물’로 신용카드를 준 셈이다.
이 사실은 최근에서야 알려졌다. 국세청은 사건 경위를 파악한 후 담당 공무원을 감봉 처분했다. 이후 A씨는 지난달 23일 개최된 기획재정부의 세무사징계위원회(이하 징계위)에 회부됐다. 세무사법상 세무사 징계의 최종 결정 권한은 기재부에 있다. 하지만 뇌물을 제공한 A씨는 100만원의 과태료라는 ‘솜방망이’ 처벌을 받는 데 그쳤다. 신용카드 사용액이 60만원가량으로 적다는 점이 참작됐다. 금품을 주고받았다는 결론이 나기는 했지만 세무사와 공무원 모두 경찰이나 검찰 고발 조치를 받지는 않았다.
A씨의 사례는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이현재 자유한국당 의원이 공개한 기재부 자료를 보면 2012년부터 2017년 7월까지 5년여간 비위나 비리로 징계 받은 세무사는 모두 274명이다. 이 중 3명은 A씨처럼 세무공무원에게 금품을 제공했다가 적발됐다. 하지만 역시 소액의 과태료 처분에 그쳤다. 2일 기재부와 국세청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적발해 수사기관에 고발한 사례는 한 건도 없다”고 입을 모았다.
이를 두고 세무공무원들에게 편협한 행정 처분만 내려진다는 지적이 뒤따른다. 세무사법에 따르면 세무사는 공무원에게 금품이나 향응을 제공해서는 안 된다. 이를 어길 경우 세무사 등록취소나 2년 이내의 직무정지, 1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다. 뇌물 역시도 이 범주에 해당한다고 보고 고발 조치를 하지 않은 것이다.
반면 형법은 뇌물을 엄정한 범죄로 본다. 형법 133조는 공무원에게 뇌물을 약속하거나 제공하는 행위에 대해 5년 이하의 징역이나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뇌물을 제공했다는 혐의를 받은 대기업 총수가 구속 수사를 받았던 것도 그만큼 중대한 사안이라는 판단이 작용했다.
전문가들은 탈세 등 다른 위법 사항은 몰라도 뇌물 문제에 대해서는 보다 강력한 안전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기재부나 국세청에서 적극적으로 법 개정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안창남 강남대 세무학과 교수는 “뇌물을 주는 행위가 적발됐을 경우 금액을 불문하고 무조건 검찰 등에 고발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
그래픽=안지나 기자
[단독] 공무원에 뇌물 건네도 세무사 처벌은 ‘찔끔 과태료’
입력 2018-04-02 18:31 수정 2018-04-02 23: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