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존중문화, 교회가 함께] 유가족 상처 아물도록… 교회가 치유의 품 돼주길

입력 2018-04-03 00:01
자살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성도들이 지난달 28일 서울 도림감리교회(장진원 목사)에서 진행된 마음이음예배에 참석해 찬양하고 있다. 마음이음예배는 이곳에서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 오후 열린다.
지난달 28일 오후 7시 서울 영등포구 도림감리교회(장진원 목사). 교회당에 들어서자 20여명의 성도들이 찬양을 하고 있었다. 예배실 앞에 놓여 있는 순서지엔 조각난 심장 위로 빗물처럼 떨어져 내리는 눈물과 심장을 감싸는 깃털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그림 위엔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롬 12:15)는 말씀이 보였다.

이곳에선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 자살 유가족과 자살 시도자 등 상처 입은 이들을 위한 모임이 열린다. 모임 이름은 ‘마음이음예배’. 찬양과 말씀(설교), 자조모임(로뎀나무)으로 이어지는 단출한 구성이지만 가족을 잃고 관계 단절을 경험한 이들에겐 딱 맞는 모임이었다. 예배에 참석한 A씨(25)는 “어렸을 때부터 왕따를 당한 정신적 충격이 사회 공포증과 조현병(정신분열증)으로 악화되면서 수차례 자살을 시도하게 됐다”고 고백했다.

“2년 전엔 환청이 심해지고 너무 고통스러워서 건물 옥상에 올라갔어요. 뛰어내리기 전 페이스북에서 마음이음예배 게시물을 봤어요. 그때 목사님께 메시지를 보내지 않았다면 지금 세상에 없을지도 몰라요. 여기 오면 마음이 참 편해집니다.”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자살 유가족들이 마음의 안정을 되찾는 데 가장 도움이 된 것은 ‘유가족 모임’(72.2%)이었다. 가족과 친척의 위로(59.7%), 자살예방센터(59.7%)나 정신건강복지센터의 전문상담(55.6%)에 비해 월등히 높다(중복응답). 마음이음예배와 같은 모임의 필요성을 방증한다.

전홍진 삼성서울병원(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2일 “자살 유가족은 일반적인 사별에 비해 심리적 충격이 더 커 애도 과정이 오래 걸린다”며 “같은 경험을 가진 이들이 서로의 이야기를 공유할 때 심리적 안정 효과도 높게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정부 차원에서도 자살 유가족이 아픔을 딛고 최대한 빨리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자조모임을 활성화하고 심리상담 서비스를 지원할 계획이다. 전명숙 복지부 자살예방정책과장은 “한국교회는 상처를 보듬고 아픔을 나누는 것이 일상화돼 있을 만큼 ‘치유 공동체’로서의 강점이 있다”며 “내부에서 자살이 발생했을 때 얘기하길 꺼려하는 보수적 시각에 변화를 준다면 생명존중 문화 확산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이나 영국의 경우 자살 유가족이나 자살 시도자가 교육을 이수한 뒤 직접 상담사로 나서며 유가족 심리 안정화와 자살률 감소에 톡톡히 역할을 감당한다. 미국에선 지역 단위로 자살 유가족이 주최하는 세미나와 상담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가족들이 기금을 마련해 자살예방 연구보고서를 발표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선 기독교자살예방센터 라이프호프(대표 조성돈 교수)가 지난해부터 유가족을 대상으로 게이트키퍼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조성돈 대표는 “치유과정과 교육이 동시에 이뤄지기 때문에 속도는 더디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일반 강사에 비해 더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라며 교회의 참여를 촉구했다. 장진원 목사도 “유가족끼리 교제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을 내어주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된다”며 “유가족 발생 시 지역교회에서 먼저 그들의 자녀들을 보살핀다면 2차 피해를 막는 방어막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글·사진=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그래픽=이영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