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클랜드전 선발 등판… 3실점 빠른 직구로 타자들 범타 처리
시범경기 부진 때와는 구위 딴판… 홈런 허용한 슬라이더가 옥에 티
2일(한국시간) 미국프로야구(MLB) LA 에인절스와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경기가 열린 오클랜드 알라메다 카운티 콜로세움에는 평소보다 적은 1만4644명만 입장했다. 그나마 원정팀인 에인절스 덕아웃 쪽에는 3분의 1가량만 앉아 있었다. 240명가량 몰려든 일본 취재진의 풍경이 오히려 어색했다. “삿포로 돔에 남기고 온 환호성보다는 조용한 분위기일 것이다.” 외신들이 경기 전 분위기를 전했다.
하지만 첫 투구 이후 경기장은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오클랜드의 1번 타자 마커스 세미엔에게 던진 초구는 96마일의 직구, 스트라이크였다. MLB 진출을 선언한 뒤 화제의 중심에 섰던 오타니 쇼헤이가 드디어 빅리그 투수로 데뷔하는 순간이었다. 1919년 베이브루스(보스턴 레드삭스) 이후 99년 만에 처음으로, 개막전에 뛰었던 타자가 10경기 내 선발투수로 출장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오타니는 공 4개로 첫 타자 세미엔을 삼진 처리했다. 에인절스 포수 마틴 말도나도의 미트에는 점점 더 묵직한 공이 꽂혔다. 2번 타자 제드 라우리에게 던진 99마일 직구는 힘없는 포수 파울플라이로 연결됐다. 이어 맷 올슨에게도 99마일 직구를 던졌는데 헛스윙 삼진이었다. 데뷔 첫 이닝을 소화하는데 13개의 공이 필요했다.
오타니는 2회말에도 선두타자 크리스 데이비스에게서 삼진을 빼앗아내며 신을 냈다. 조금 들떴는지, 맷 조이스와 스티븐 피스코티에게는 연속 안타를 맞았다. 2명의 주자를 두고 맷 채프먼에게 던진 슬라이더가 조금 높았다. 좌월 3점홈런이었다.
신인으로서 흔들릴 법한 상황이었지만 오타니는 그때부터 6회를 마칠 때까지 15타자 가운데 14타자를 범타 처리했다. 볼넷만 1개 내줬을 뿐이었다. 냉정을 되찾게 한 사람은 에인절스의 마이크 소시아 감독이었다. 오타니는 “홈런을 맞은 뒤 소시아 감독이 다가와 ‘넌 잘 하고 있어’라고 말해 줬다”고 밝혔다.
6회말 2사 상황에서 데이비스를 상대로 던질 때에는 아차 싶었다고 한다. 스플리터를 던졌지만 치기 좋은 코스에 밋밋하게 들어갔기 때문이다. 오타니는 “공이 떠나는 순간에는 홈런이 되겠다고 생각했다”며 “운이 좋았다”고 했다. 이날 오타니의 마지막 투구를 받아친 데이비스의 타구는 유격수 뜬공으로 마무리됐다.
이날 오타니는 봄 시범경기의 부진 때와 딴판이었다. 스탯캐스트에 따르면 직구의 최고 구속은 시속 99.6마일(160.3㎞)까지 나왔다. 평균 구속이 98마일에 이를 정도였다. 오클랜드 타자들은 오타니의 직구에 48번 방망이를 휘둘렀는데 7번은 건드리지 못했다.
직구와 섞어 던진 스플리터와 슬라이더도 효과적이었다. 슬라이더를 공략해 홈런을 친 채프먼도 “구위가 정말 뛰어났다. 운 좋게 공 하나가 몰렸을 뿐”이라며 오타니를 치켜세웠다. 9회말까지 에인절스가 리드를 허용하지 않으며 오타니는 데뷔전 승리를 기록했다. 6이닝 3실점, 탈삼진은 6개였다.
오타니를 향하던 의구심은 찬사로 변했다. CBS스포츠는 “MLB 구단들이 왜 그토록 오타니를 원했는지 보여준 투구”라고 평가했다. NBC스포츠는 ‘와’라는 감탄사를 오타니의 이름과 결합, ‘WHOA-TANI’라는 뉴스 제목을 뽑았다. 소시아 감독은 “이제 다들 그의 재능을 보셨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타니는 투구에 영향을 받지 않는 선에서 지명타자로도 출전한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속탔던 오타니… 의구심이 찬사로
입력 2018-04-02 18:41 수정 2018-04-02 2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