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남구 우암동은 부산의 대표적인 달동네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부산으로 몰려든 피난민들이 이곳에 자리를 잡고 판자촌을 형성했다. 동네는 한때 해군기지가 들어서며 번영기를 맞았지만 진해로 기지가 옮겨진 뒤 인구가 크게 줄었다. 그 후에도 대학이 다른 지역으로 이전하고 중학교가 폐교되는 등 어려운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우암장로교회(변만호 목사)는 이런 마을의 한복판에서 우암동에 남아있는 이들, 그중에서도 기초생활수급자들을 섬기는 ‘보급목회’ 사역을 10년째 감당하고 있다. 주일이었던 지난달 25일 우암장로교회를 찾아 함께 예배를 드렸다.
교회는 부산의 관문인 부산역에서 북동쪽에 있다. 버스로 20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우암동 거리는 한산했다. 문을 닫은 가게도 여럿 보였다. 5분쯤 길을 따라 올라가자 우암장로교회 간판이 나왔다. ‘우암장로교회는 환난당한 자, 빚진 자, 마음이 원통한 자를 위해서 세워진 교회입니다’라는 문구가 눈에 띄었다. 교회 문을 열고 들어서자 20여명의 교인이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교인 대부분이 60대에서 90대까지 노인이었지만 이들의 찬양 열기와 설교 집중도는 젊은이들 못지않았다.
담임 변만호(57) 목사는 2009년 우암장로교회를 개척했다. 본래 목회가 아닌 집사로서 신앙생활을 해 나갔다. 그러다 1998년 외환위기 직후 많은 돈을 잃는 아픔을 겪었다. 당시 수중에 남은 돈은 단 300만원. 그런데 양경희(57) 사모가 “이 돈을 모두 헌금하고 과연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인도하실지 확인해보자”고 말했다. 그 말에 남은 돈을 모두 헌금했다 한다. 이후 10여년 만에 모든 빚을 갚고 재기했다.
그러던 변 목사의 삶은 어느 날 전환점을 맞았다. 그는 “어느 정도 살 만해지자 하나님께서 ‘이제는 나를 위해 살아라’는 마음을 주셨다”고 회고했다. 넉넉지 않은 생활이었지만 곧 목회의 길을 따랐다. 그렇게 개척지로 결정한 장소가 바로 우암동이었다. 기초생활수급자들이 많은 빈민들의 동네였지만 그의 눈엔 주민 하나하나가 구원받아야 할 영혼으로 보였다.
교회 시작은 험난했다. 6개월 동안 그의 가족끼리만 예배를 드렸다. 그래도 꾸준히 동네를 오가며 어려운 사람을 돕고 복음을 전했다. 그러면서 “우암장로교회 목사가 사람들을 잘 도와준다더라”는 입소문이 돌면서 기초생활수급자와 독거노인 등이 하나둘 교회를 찾아왔다.
많은 교인들이 변 목사와 함께 우암장로교회에서 새 삶을 찾았다. 박모(66) 집사가 그중 하나다. 박 집사는 툭하면 병원 응급실에 실려 갈 정도로 술독에 빠져 살았다. 그러다 변 목사를 만났다. 비가 세차게 오던 2015년 4월 그는 술에 취해 쓰러져 있었다. 연락을 받고 달려온 변 목사가 그를 부축해 집으로 데려갔다. 원래 박 집사 아내가 먼저 교회에 다니고 있어서 변 목사와 안면이 있던 터였다. 박 집사는 그날 무릎을 꿇고 “이제 술도 끊고 교회도 열심히 다니겠다”고 다짐했다. 박 집사는 그 약속을 3년째 지키고 있다.
현모(64) 집사는 박 집사를 통해 변 목사를 알게 됐다. 현 집사는 “폐인이 돼 하루하루 힘들게 살아오던 중 변 목사를 만났다”며 “나를 보더니 교회 가기 전에 병원부터 다녀오라고 하더라”고 변 목사와의 첫 만남을 기억했다. 변 목사의 도움으로 병원에 입원해 건강을 되찾은 뒤에는 술을 끊고 성실하게 살아간다. 이혼한 부인이 목사에게 연락해 “그 사람이 정말 술을 끊은 게 맞느냐”고 물어볼 정도였다. 변 목사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한 현 집사는 앞으로 더욱 열심히 하나님을 공부해 볼 생각이다.
변 목사는 “어렵게 지내면서 마음의 여유가 없던 이들이 신앙을 고백할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고 말한다. 좋은 교회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온 이성혜(72·여) 집사가 그 열매 중 하나다. 이 집사는 중학생 시절 이후 약 60년 만에 처음으로 교회에 나왔다. 이 집사는 “아픈 이들을 많이 돕는 변 목사의 모습을 보고 다시 교회에 다니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고 고백했다.
우암장로교회는 오전 예배 이후 점심식사를 한 뒤 오후에도 예배를 드린다. 식사 이후에도 아무도 자리를 떠나지 않고 오후 예배에 함께했다. 이들에게 우암장로교회는 교회이기도 했지만 또 다른 보금자리이기도 했다.
휠체어 밀어주고… 약 대신 타다주고… 이발해주고… 발로 뛰는 ‘보급목회’
지난달 25일 우암장로교회 오후 예배가 끝난 뒤 변만호 목사는 교회 밖으로 나와 세워놓은 휠체어를 들고 예배당으로 돌아왔다. 이어 그는 익숙한 동작으로 함께 예배를 드린 김모(63) 집사를 휠체어에 태웠다.
휠체어를 밀며 김 집사와 교회 밖으로 나온 변 목사는 사람 한 명이 겨우 걸어 다닐 만한 좁은 골목길로 들어갔다. 약 5분을 걸어 김 집사의 집에 도착한 변 목사는 김 집사의 신발을 벗긴 뒤 조심스레 침대 위에 앉혔다.
변 목사는 “집사님은 보이스피싱 사기를 당한 충격으로 담배를 너무 많이 피워 폐가 상했다”며 “거동이 불편해 내가 매주 휠체어로 옮겨드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집사의 침대 오른쪽에는 박스가 하나 있었다. 변 목사가 인터넷을 통해 다량으로 구매한 기저귀들이다. 김 집사는 “목사님 덕에 산다”며 “너무나도 감사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평소에도 변 목사는 김 집사를 위해 약을 타오고 이발을 해주는 등 다방면으로 신경을 쓰고 있다. 원래 김 집사가 시내에 있는 병원에서 약을 받고 있었지만 대기 시간이 너무 긴 것을 안타깝게 여긴 변 목사가 병원과 담판을 짓고 대신 약을 타오고 있다.
변 목사가 교회를 개척할 때부터 비전으로 삼은 ‘보급목회’의 일면이다. 우암장로교회 성도들은 생활에 곤란을 겪는 이들이 많다. 변 목사는 이들을 자주 찾아다니며 이야기를 들어주거나 자료를 모아 장애인 등급을 받게 해주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도움을 주고 있다. 그에게 장례를 부탁한 성도만 3명이다.
변 목사가 이렇게 보급목회에 헌신하며 가지는 비전은 무엇일까. 변 목사는 “사무엘상 22장에는 다윗이 쫓겨 다닐 때 환난당한 모든 자와 빚진 자, 마음이 원통한 자 등 400여명이 모인 장면이 있다”며 “권력자나 지역 유지가 아니라 평범한 이들이었지만 결국 그들이 나라를 회복하는 데 쓰임 받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주님을 바라보고 나아갈 때 우리 모두가 쓰임 받을 수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부산=글·사진 이현우 기자 base@kmib.co.kr
부산 우암장로교회 변만호 목사 “달동네 노인 보듬는 보급목회, 하나님 위해 사는 길”
입력 2018-04-03 0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