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예고없이 강제집행… 길거리서 부활절 맞은 교회

입력 2018-04-01 18:39 수정 2018-04-01 21:21
법원의 강제 명도 집행으로 거리에 내몰린 강남향린교회 교인들이 1일 서울 송파구 교회 앞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부활절 예배를 준비하고 있다. 조민아 기자

4m 높이의 철제 펜스 때문에 교인 40여명 돗자리 깔고 예배
교회 측 “연락·예고 통보 없이 강제집행해 절차 무시” 주장

정옥진(60·여) 강남향린교회 장로는 “부활절인데 마음이 무겁다”며 교인들을 위해 준비한 삶은 달걀을 간이 테이블 위에 올렸다. 테이블은 철거가 진행 중인 흉물스러운 건물이 가득한 골목길에 놓여 있었다. 1일 오전 서울 송파구 강남향린교회 부활절 예배는 이곳에서 열렸다. 교인 40여명은 돗자리를 깔고 앉아 찬송을 불렀다. 4m 정도 높이의 철제 펜스가 교회 입구를 막아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서울동부지법 집행과는 지난 30일 오전 9시쯤 이 교회에 대한 강제명도 집행을 단행했다. 교회 측에는 사전에 알리지 않았다. 재개발조합 측이 “교회에 알리지 말라”는 탄원서를 법원에 보내 데 따른 조치다. 강남향린교회는 ‘거여2-1지구 재개발지구’에 포함돼 있다. 교회는 재개발조합과 명도소송 항소심을 진행 중이었지만 오금동에 건물을 샀고 다음 달 초쯤 이사를 갈 계획이었다. 김수산나(31·여) 부목사는 “강제집행 당일까지 법원으로부터 어떤 연락이나 통보도 못 받은 상태였다”며 “강제집행 당시 너무 무기력했다”고 말했다. 현재 교회 내부 집기들은 경기도 하남·구리 등지의 물류센터로 옮겨졌다.

통상 강제집행이 결정되면 법원은 계고장을 발송해 집행 사실을 예고하고 1∼2주 동안의 자진 철거 기간을 허용한다. 법원마다 업무지침이 달라 집행 계고를 한두 번 하는 곳도 있지만 이를 생략하는 곳도 있다. 민사집행법규상 계고 절차를 의무화한 규정이 없어 법원마다 업무지침이 다른 것이다. 동부지법 관계자는 “채권자 측에서 예고 없이 강제명도 집행을 해달라는 신청이 있었다”며 “원칙에 따라 집행을 완료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동부지법 집행과 사무실에 걸린 ‘건물명도 집행 흐름도’에는 건물인도 예고 시 이를 1∼2주 전에 통지한다고 명시돼 있다. 강제적 집행만 우선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한 장치다. 강남향린교회 강제명도 집행 때는 이런 방침이 지켜지지 않았다. 부활절을 코앞에 두고 이뤄진 배려 없는 사법행정에 교인들이 갈 곳을 잃은 것이다. 교회 관계자들은 오후 3시30분 동부지법 앞에서 합동 규탄 기도회를 열었다.

강제집행 시 사전 계고를 법으로 명문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법의 미비가 낳는 사회 갈등을 줄이자는 것이다. 제일좋은법률사무소 이태호 변호사는 “행정대집행법과 달리 민사집행법규는 계고 또는 집행 예고 절차를 명시적으로 규율하고 있지 않아 법원마다 내부 지침이 다르다”며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게 법적으로 명문화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서울시 관계자도 “강제집행 시 사전에 계고가 이뤄질 수 있도록 법원과 구청에 강력히 요구할 예정”이라고 했다.

손재호 조민아 기자 sayh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