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전 대통령이 지난달 22일 구속된 후 열흘 넘게 검찰 조사를 거부하고 있다. 피의자로서의 진술거부권을 행사하겠다며 수사검사들에게도 얼굴 한 번 내보이지 않았다. 이는 정상적 형사절차를 무시한 처사라는 지적이 일각에서 나온다.
1일 법조계에 따르면 구속된 피의자 신분인 이 전 대통령이 조사실에도 나오지 않는 건 정당한 진술거부권 행사라 볼 수 없다는 해석이 많다. 조사실에는 나오되 현장에서 묵비를 하는 식으로 진술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뜻이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진술거부권은 피의자의 정당한 권리지만 조사 자체를 거부하는 권리가 주어진 건 아니다”며 “진술거부권이지 조사거부권은 아니다”라고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진술거부권 행사를 떠나 구속 후 다섯 번 검찰 조사에 응했다.
현재 검찰은 변호인을 통해 간접적으로 이 전 대통령을 설득하고 있다. 이미 구속영장을 발부 받은 검찰로서는 구속 기한 내 별도 체포영장 없이도 이 전 대통령을 강제로 조사실에 앉힐 수 있다. 그러나 이 전 대통령이 조사에 불응하겠다는 뜻을 명확히 밝힌 상황에선 실익이 없을 수 있다. 전직 대통령 예우 문제도 무시하기 어렵다. 검찰은 일단 이 전 대통령에 대한 직접 조사를 계속 시도할 방침이다. 검찰 관계자는 “여전히 이 전 대통령께서 의미 있는 방어권 행사를 하시길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검찰은 이 전 대통령 조사와 함께 김윤옥 여사 조사 문제로도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앞서 김 여사는 검찰의 비공개 조사 요청에 ‘남편도 조사를 거부하는 상황에서 조사를 받는 게 말이 안 되는 것 같다’며 불응했다. 김 여사는 이팔성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으로부터 현금 3억5000만원과 1000여만원 상당의 의류를 건네받은 정황이 나온 상태다. 이 전 대통령 구속영장에도 부부가 공모한 것으로 명시돼 있다. 금품 전달 경위 규명 등을 위해 조사 필요성이 높지만 강제구인 등을 하기엔 검찰도 부담을 느끼는 상황이다.
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
‘진술거부권’ 뒤 꼭꼭 숨은 MB… “형사절차 무시”
입력 2018-04-02 05:03